“내가 어떻게 하면 네가 기운이 나겠니?”라고 선생님이 물어봐주셔서 참 좋았다.  면담하고 있는데 엘링턴한테 연락이 왔다.  빅뱅 콘서트 티켓 한 장이 남는다고.

깜!  짝!  놀랐다.  태양이는 옷을 세 번이나 벗어제껴 던졌다.  난 아이돌 콘서트 첫경험이라 한동안 분위기에 적응을 못했다.  처음엔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앉아 있었다, 처음엔.  빅뱅 노래 중엔 아는 노래도 거의 없었다.  “거짓말”은 예전에 고시원 살 때 옆방 여자 모닝콜이어서 매우 싫어했지만 공연장에서 들으니까 모르는 노래 할 때보다 훨씬 신났다.  간주 부분 박자에 맞춰서 빅뱅 멤버 본명을 외치는 모습은 롯데 갈매기들이 1회에 1번부터 투수까지 한 명씩 이름 불러주는 풍습과 흡사했다.  그러고보니 공연장이 야구장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도 같았다.  

아이돌을 ‘가수’라는 이름 아래에 놓는 것은 무리구나.  어떤 컨셉을 가지고 각자의 캐릭터로 팬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하듯 온몸으로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구성하는 요소로 각종 무대 장치와 와이어, 의상, 동선, CG 화면, 소품, 조명, 백댄서의 연기 등이 “라이브로” 동원된다.  만약 이런 요소들이 없는 어떤 빈 공간에서 아이돌과 아이돌이 아닌 다른 종류의 뮤지션들을 섞어놓고 진짜 ‘가수’를 뽑겠다며 서바이벌을 한다면?  이런 의문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것.  아이돌은 – 아마 오늘 내가 본 무대에서의 빅뱅처럼 – 공연의 모든 요소가 버무려진 그 상황 자체인 것 같다.  한 세트로.

또 하나 깜짝 놀란 건 앞쪽 스크린 중계.  몇 개인지도 모르겠는 카메라가 서로 다른 앵글로 미친듯이 전환을 하면서 아이돌을 잡는데, 거기에다가 눈을 딱딱 마주치면서 공연하는 아이돌의 시선!  메인 카메라와 멀리 떨어져서 관객 전체를 향해 춤을 추며 노래를 하고 있는데 스크린을 보면 나랑 눈이 마주친다구….  그러면서 옷을 막 벗어….  아예 밴드 음악처럼 스트라토캐스터 음색과 재즈 베이스 스타일이 도드라지게 편곡한 몇 곡도 괜찮았다.  신스 비트 자리에 어쿠스틱 드럼 얹은 것도 신났음.

그러나 전체적인 어쿠스틱은 미들이 다 뭉개지고 게인만 너무 커서 처음부터 끝까지 텁텁한 사운드였다.  탑 랩이 저음 옹알이로 필터링되어 다소 안타까웠다.  GD는 show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있는 것처럼 보였고 제일 집중력있게 공연했다.

다양한 국적의 팬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다.  우리 일행은 중국계 영국인 두 명, 미국인 한 명, 나 – 이렇게 모두 네 명이었다.  공연이 끝난 척 할 때 “앵콜!”을 외치는 게 아니라 “사랑해!”라고 한다(이것 역시 나의 깜놀 포인트).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하겠어서 -_-;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영국인 친구가 내 목소리가 안들린다고, 빨리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어쨌든 앵콜곡까지 다 듣고 나왔다.  영국 친구 둘은 건대에서 더 논다고 하여, 올림픽공원에서 넷이서 택시를 타고 건대까지 가서 헤어지기로 했다.  택시 기사가 한 명당 만 원씩 해서 4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엘링턴이 “콘대” 가자고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듣고 있다가 어이가 없어서 내가 “안타요!” 했다.  다른 택시를 타니까 7,100원이 나왔다.  속는 외국인들이 있다 한들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괘씸했다.

오늘은 빅뱅이라는 5인의 연예 활동이 아닌, ‘아이돌’이라는 추상명사를 첫경험한 하루였다.  이러고 나니까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아요, 선생님.  이래서 이 세상에 아이돌이 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