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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t on your sweater

청소하다 종이인형 더미가 나왔다.  작년 11월 즈음에 “It’s cold” 단원 수행평가를 위한 활동을 했다.  1학기 때 3학년 180여 명과 1대 1 인터뷰를 세 번씩 하느라 목이 쉬어 2학기 때 나름 꾀를 냈는데…  2인 1조로 롤플레이를 하게 하고 난 지켜보며 평가하려는 계획이었다.  아이들이 나와서 target language를 사용할 줄 아느냐, 짝이 한 말을 이해하고 알아들은대로 행동하느냐: 이것만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 한 사람씩 하는 것보다 별 부담이 없을 거라 생각했으나, 실제로 해 보니 저 목표는 엄청난 고민을 수반하는 다단계 미션이었던 거다.

학습 목표: 그림을 보며 지시 및 제안하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목표 언어: It’s cold.(optional) → Put on your [sweater/gloves/etc.]. → OK! → 짝과 번갈아가며 뭔가를 입으라고 몇 번 더 제안한다 → Let’s go outside. (optional)

여기서 학생들이 하게되는 고민은 다음과 같았다.

1.  어떤 성별의 종이 인형을 고를 것인가?: 일괄적으로 여자에게 여자 인형을 주고 남자에게 남자 인형을 주고 싶지 않았다.  옷가지만 미리 주어 꾸미게 한 후 평가를 하러 나올 때 인형을 골라 가지고 오게 했다.  90% 이상이 자신과 같은 성별의 인형을 골랐다.  자신이 고르는 것이 단지 수행평가를 위한 종이 인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여자 인형을 고른 남자에게 “너 여자야?”라고 진지하게 물어보거나 놀렸다.  그런데 남자 인형을 고른 여자 아이들은 꼭 자랑스럽게 “난 남자 할거야!”라고 말한 반면, 여자 인형을 고른 남자 아이들은 그에 대한 말이 거의 없었다.  왜일까?

2.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칠판 앞에 커다랗게 북극에 필적하는 추운 그림을 붙여놓았으나 그걸 보고도 “It’s cold!”라고 대화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미리 알려줘도 마찬가지였다.  ‘추워서 뭐?’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지금 너무 추워서 서로 옷을 입혀줘야 한다고 90번 설명했다.  이건 내가 단원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못 시켜서.

3. 뭘 입으라고 하지?: 여기서 또 성별의 문제가 크게 작용할 줄은….  여자 학생은 남자 짝꿍에게 “Put on your skirt”라고 말하고 싶은 본능이 있는 걸까?  짝꿍이 질색하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 열심히 고르는 이들과 더불어 짝꿍이 정말 입고싶어서 멋지게 칠해 준비한 것을 골라 말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3-1. 짝이 입으라고 한 것을 입기가 싫다: 이건 100% 영어 수행평가다.  짝이 입으라고 한 것을 입기 싫을 경우 아이들은 영어로 뭐라고 못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안하고 짝을 노려본다.  울며 겨자먹기로 상대방이 제안하는 바를 받아들이다보면 내 인형(감정이입했으니까 결국 나 자신)은 내가 입기 싫은 것들을 입게 된다.  평가가 끝날 무렵 인형을 갖다 버리고 싶은 마음을 짝과 나에게 격하게 표출한다.  대화와 평가가 너무 제한적인 것이 문제다.  내가 사전에 “No”라고 말할 수 있다고 다른 선택지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제안하는 걸 다 수락하게 만든 교과서가 답답했다.

기타.  이상해요: 선생님, 처음부터 둘이서 아무 것도 안 입고 대화를 시작하는 거예요?  꺄!  너무 야해요! / 선생님, 추운데 신발을 신으라고 말하나요?  이상해요. / 선생님, 아직 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춥대요?  이상해요. / 선생님, 추운데 꼭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해요?  이상해요.

결국 1학기 때보다 더 목이 쉬었지만 즐거운 관찰이었다.  시간 관계상 내 앞에 나와서 할 때는 풀로 붙이지 않고 살짝 올려놓기만 한 다음, 자리에 가서 평가와 관계 없이 자유롭게 만들어 보라고 했다.  어른들은 은연 중에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고 때묻지 않은 존재라고, ‘동심’에 대한 환상 혹은 편견을 드러낸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건 아이들의 특성을 ‘평균’ 내서 하는 말이다.  통계의 오류가 아이들을 향한 인식에도 분명 존재한다.  평화로운 아이들, 영악한 아이들, 극단적으로 천진난만한 아이들 등등 하나하나 다 다름을 알게되면 과연 ‘아이들은 어떠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은 것이다.

이 늦은 밤에 종이 인형 쓰다듬으며 애들을 보고싶어 하다니….;  

irreversibility

Several days after my visit to the music store, a minor disaster nearly drowned me.  The two eggs I was about to place in a pot of water and boil up for my daily meal slipped through my fingers and broke on the floor.  Those were the last two eggs of my current supply, and I could not help feeling that this was the cruelest, most terrible thing that had ever happened to me.  The eggs landed with an ugly splat.  I remember standing there in horror as they oozed out over the floor.  The sunny, translucent innards sank into the cracks, and suddenly there was muck everywhere, a bobbing slush of slime and shell.  One yolk had miraculously survived the fall, but when I bent down to scoop it up, it slid out from under the spoon and broke apart.  I felt as though a star were exploding, as though a great sun had just died.  The yellow spread over the white and then began to swirl, turning into a vast nebula, a debris of interstellar gases.  It was all too much for me – the last, imponderable straw.  When this happened, I actually sat down and cried.

Marco가 떨어뜨린 마지막 달걀.  “돌이킬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준다.  사실 이 세상에 돌이킬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으며 이는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cd-rom dialog를 거꾸로 돌려달라고 떼를 쓰고 뒤로 걷는 민수에게 열광할 수 있다.  깨진 달걀이 다시 붙어 돌아오는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고서 동화책을 거꾸로 읽었다고 한다.  왼손잡이라 그럴 것이라는 할머니 의견에 따라 오른손잡이로 개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향 문제가 아니라 ‘시간’ 문제가 아니었을까….

내가 관심있는 주제는 ‘시간’이다.  위에는 비가역성이라는 시간의 한 특성만을 예로 들었으나, 시간 개념이 건드리는 영역은 마치 시간처럼 한계가 없다.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만나 어떤 관계가 되나?  고흐의 시간과 호퍼의 시간, 나의 시간은 이어져 있나?  우리 할머니의 시간은 무덤 안에 있을까?  엄마 아부지의 결혼 생활과 나의 일생은 같은 26년일까?  시간과 함께한 경험과 기억을 잊으면 시간도 없어지는 것일까?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진짜일까?  시간은 육체도 영혼도 아니면서 분명 존재하는 목소리 같은, 그런 것일까?

나는 시간을 책에 녹음하고 싶다.  그림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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