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지역연계 프로젝트’에 관련된 콜로키움에 갔었다.  대담자로 참여하신 한 분께서는 공공예술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요즘 예술에 있어 ‘community’를 거론하는가, community art는 왜 감동을 못 주나, 그래야만 하는가, 주류 미술 시장에서 소외된 예술가에게 돈을 쓰겠다는 –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쉬운 – 세력이 되고 있지는 않나, 이런 정책적인 측면은 community art의 본질과 반대쪽에 서있다, community art의 지향점, 거대 자본주의/시장주의/중앙집권정치에 저항하는 예술의 한 형태, 타자지향적 작업과 자기지향적 작업, 순응적 작업과 전복적 작업 등에 대해 말씀하셨다.  저항하지 않고 문제의식 없이 그저 자료만 뿌리듯 보여주는 것은 감동이 없고 community art의 본질이 아니라고 했다.  작업에 접근할 때부터 애초에 그런 시선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했어야 한다고 했다.  에디팅 없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예술적 코드를 가진 감동을 주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지역민이자 창동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공공예술의 공식적 타자로서 위와 같은 생각에 반대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가 보여준 슬라이드 용어에 따르면 나는 창동 주변 지역에 사는 ‘지역민’이다.  문화적 혜택이 전무한 강북 끝자락 지역에서 이룬 ‘업적/성과’를 이어서 보여줌으로써 맥락적으로 창동 지역민을 문화적 savage로 가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맞다.  여기 미술관 같은 거 없다.  그러나 창동-방학동-상계동 사람들이 이 지역에 기대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한 시간 가량 걸려 퇴근한 다음 조용히 쉴 수 있는 집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서울 어디에 있는 미술관이라도 갈 수 있으니까.

예술은 종교가 아니며 누군가가 호혜적으로 베푸는 방식으로 ‘포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렇게 예술가들로 하여금 창동 지역민과 연계하여 무언가를 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고, 채택의 대가로 스튜디오 레지던시 3개월을 주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지역민과의 지속가능한 연계는 불가능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스튜디오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한 생색 퍼포먼스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작가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갑자기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동네 지역민들이랑 뭘 하겠다고 제안할 수 있을까?  일단 자신이 해오던 작업의 연장선에서 그 저변을 창동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가능할텐데, 생각해보면 그 확대의 새로운 기반이 꼭 ‘창동’이어야만 창동 주민에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창동’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community artist다’라고 자신의 작업 정체성을 확고히 한 작가들에 대한 비평이 대담자 분의 의견과 같았다면 내용의 대부분을 수긍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인이 monochrome 하다 보니 어느 순간 modernism을 이끌고 있더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내 작업을 좌표 어디에 위치시키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다 해도 몇 십 년이 흐르면 축 자체가 이동해 있기도 할 것이다.  다른 한 참여자가 말씀하셨듯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개인 작업의 레퍼런스로 공공예술의 당위적 특성이 발전해 온 역사를 활용하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되지….

콜로키움만 아니었다면 즐겁게 봤을 전시.  아 우리 이쁜 할머니 살아 계셨음 규방가사 각명기에 재밌게 참여하셨을 텐데!  미리 알았더라면 나 시발공짜택시 잡아 타고 바다 보러 가자고 했을 텐데!  정성스러운 작업들을 다소 늦게 알아서 아쉬웠지만 결과를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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