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늙은 친구는 내가 도서관 데스크에 앉아있을 때 발자크의 책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찾아서 갖다줄테니 기다리라는 말에 서툰 영어로 “you can’t, you can’t”라고 해서 왜 그러나 했더니, 그가 원한 건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발자크 전집 한 질이었다.  내가 들고올 수 없을테니 같이 가겠다는 말이었다.  난 휴학생 근무자라서 그 시기에 하루 8~13시간 도서관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도서관에 올 때면 거의 언제나 같이 책을 찾으러 갈 수 있었다.

그 이후엔 그가 나에게 무슨 부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모파상에 대한 숙제가 있다고 말하면, 프랑스 최신 문학 저널에서 그가 봤다는 관련 아티클을 찾아서 영어로 바꿔 읽어준다거나.  르누아르 영화 보고 왔다고 하면 화가 르누아르와 영화 감독 르누아르가 부자지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거나.  녹색광선을 봤다고 얘기하면 델핀 같은 여자와 데이트할 수 있을지에 대해.  보니까 델핀이 기차역에서 남자를 만나기 직전에 ‘백치’를 읽고 있었지만 난 안 읽었다고 백치처럼 말하면 그는, 에릭 로메르 영화에 등장한 여러 문학 작품에 대해 그가 쓴 에세이 이야기를 해준다거나.  파스칼의 삼각형, 누벨바그는 new wave, 400번의 구타에 나오는 ‘우리의’ 발자크….  만남과 대화를 이어가는 원동력으로서의 경외감은 대부분 나의 무식함과 호기심에 기인하고, 그게 딱히 싫지는 않지만 그가 한국어로 문자를 보낼 때면 최대한 못알아듣는 척을 해서라도 우리의 역할을 잠시나마 떼쓰며 바꿔보려 할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들어주는 이야기는 그 사람 옆집에 사는 시끄러운 여자 두 명 욕, 마포구 전세 보증금 인상, 싸이클링 하다 도로에 있던 파이프에 걸려 넘어져 어깨뼈가 살을 뚫고 나온 사건 사고, 딸과 스카이프 하는 기쁨, 홍대에 새로 생긴 괜찮은 펍, 몇몇 한국 tv 프로그램 기타 등등.  이런 종류의 수다 주제를 프랑스 문화 예술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비중있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우리 대화의 한 특징인 것 같다.

한번은 늙은 친구의 부모님이 학교 구경을 오셨을 때 복도에서 마주쳤다.  백발이 성성한 세 명의 프랑스 노인과 차례대로 인사를 나누었다.  또 한번은 늙은 친구의 어리고 아름다운 딸이 인도네시아에서 놀러왔을 때도 마주쳤다.  아내가 인도네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만났을 때 늙은 친구는 첫 번째 아내와 몇 살에 결혼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로 7년 째 이따금 이야기를 나눠오면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거짓말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사실이 아닌 말?  진짜냐고, 어떻게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냐고 말하지 못할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학부 학기가 끝나자마자 프랑스 또는 인도네시아에 가고, 개강 즈음해서 서울에 온다.  시간이 빠르다고 느낄 때가 자주 있다만, 오늘처럼 그 친구와 한 번도 만나지 않고 한 학기에 해당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걸 깨달을 때면 특히 그렇다.  오면 가고, 가면 오는 늙은 친구.  지난 번엔 나 준다고 잎담배를 사왔는데 약속이 차일피일 미뤄져서 자기가 하나씩 하나씩 다 피웠다고.  엄청 뜬금 없는 선물인데다 그걸 자기가 피워버렸다고 말하는 게 웃겨서 그 얘길 듣자마자 크게 소리내 웃었다.

오늘 갑자기 늙은 친구가 보고 싶었는데 서울에 없어서, 올 때 잎담배 사오라고 메일을 보냈다.  언젠가 늙은 친구가 너무너무 늙어서 학기 단위로 삶을 살지 않게 되고 그래서 더이상 서울에 오지 않게 된다면 난 조금 슬플 것 같다.  하지만 언제가 마지막 만남일지 모르는 사람과는 기회가 될 때 최대한 자주 만나야 하는 걸까?  그건 나의 지나친 욕심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문득 G를 보고싶어한들 G에겐 내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의미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헤어지자마자 다음에 만날 때까지 나란 사람에 대해 1초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걸 이제 나는 좀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알게 되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넘치는 나의 정을 돈으로 좀 바꿀 수 있으면 좋겠네.  그럼 난 그 돈을 정 주고 싶은 사람한테 쓰겠지.  내가 매정하다고 느꼈을 사람들에겐 참 미안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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