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근사한 일을 아는가?  엽서를 베끼는 일처럼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일이 회화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리고 사슴, 비행기, 왕, 비서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릴 수 있다는 자유.  더이상 창작하지 않아도 되는 것….  색, 구성, 공간, 그리고 지금까지 알아왔던 그리고 생각해왔던 모든 것이 미술의 전제조건이기를 갑자기 멈춰버리는 것.

물론, 나는 끊임없이 내 무능력에,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가치 있는 진정한 그림을 그리지 못할 거란 생각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이란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 알지조차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절망한다.  반면, 나는 항상 희망들, 어려움에 굴하지 않으면 언젠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내가 갈망하는 것을 내게 상기해주는 그 무언가가 여기저기서, 조금씩 실제로 생겨날 때 나는 이 희망을 또한 키운다.  물론 평범한 것만 남긴 채 사라지는 순간적인 발견들에 여러 번 속기도 했지만 말이다.  내게는 어떤 주제는 없다.  어떤 동인만 있을 뿐이다.” – Gerhard Richter

안성 언니가 편지지에 볼펜으로 적어준 글이다.  자료 모으는 파일 맨 뒤에 꽂아놓고 종종 읽으면 덜 불안하고 좋아서 여기에도 적어둔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동인’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국어사전에는 ‘어떤 사태를 일으키거나 변화시키는 데 작용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나오는데.  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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