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iler alert) 세상이 끝나는 영화 두 편을 봤다.  ‘멜랑콜리아’는 지구에 충돌하는 행성 이름으로, 예견된 종말 앞에 선 한 가족의 심리 상태를 저스틴(커스틴 던스트)과 클레어(샬롯 갱스부르) 자매의 행동으로 보여준다.  ‘토리노의 말’은 위의 오프닝 시퀀스에 나와있듯 니체가 겪은 일화에서 따온 제목이며, 반복되는 단순하고 고된 일상에 하루가 다르게 찾아오는 위협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형식적 측면에서 본 두 영화의 몇 가지 공통점을 간단히 적어둔다.

1. 세상이 끝난다: ‘멜랑콜리아’는 행성 충돌하는 순간 무한한 빛으로, ‘토리노의 말’은 무한한 어둠으로 세상을 끝낸다.  두 영화의 엔딩 모두 숨을 참아야 할 정도의 압도감을 느꼈다.  흰 스크린에선 지구와 함께 한 순간에 내가 타 없어진 것 같았고 검은 스크린에서는 진짜로 ‘나’라는 촛불이 사그러들어 꺼진 기분이었다.

2. 말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말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말은 다리를 건너려 하지 않고(멜랑콜리아) 사료도 안먹고 수레를 끌려고 하지 않는다(토리노의 말).  그런 말 앞에서 인물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마구 때리고 애원도 해보지만 소용 없다.  사람은 사람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야생의 말을 길들이고 오래 함께 살았어도, 결정적인 순간 인물의 의지에 응하지 않는 말 앞에서 좌절한다.  우리나라 속담 중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게 있는 걸 보면 말 너란 동물 깨우침을 주는 동물….  두 영화에선 좌절의 아이콘.

3. 집과 그 주변으로 한정된 setting & 기상 악화: 클레어는 행성 충돌을 확신, 아들을 안고 시내로 나가길 시도하지만 우박을 맞으며 이내 돌아온다.  아버지와 딸도 마당 우물이 마르자 짐을 다 싣고 집 외의 다른 곳으로 가보지만 거센 모래돌풍을 집 밖에서 직접 맞기만 하고 돌아온다.  한정된 공간이라는 장치를 설정해둔 덕분에 사건 앞에 선 인물의 내면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멜랑콜리아’에서 저스틴 저택 밖으로 빠져나가는 결혼식의 하객들, ‘토리노의 말’에서 부녀의 집을 거쳐가는 방문객, 이웃 사람의 극중 비중이 없다는 게 아니다.  이들에겐 출연 분량과 관계 없는 자못 분명한 역할이 맡겨져있고 이를 훌륭히 수행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그들이 남기고 떠나는 주인공 얼굴들 앞으로 끌고 온다.

4. 미친 촬영: 눈 깜빡이는 것도 아쉬움.  라스 폰 트리에 이럴거면 앞으로도 씨쥐를 적극 활용해달라.  벨라 타르 롱테이크 미쳤어….

5. 챕터 분할: ‘멜’은 저스틴 부분과 클레어 부분, 두 챕터로 나눠져있다.  같은 사건을 시점의 차이로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순차적인 타임라인 위에서 어떤 인물 중심으로 풀어나갈지에 따른 분할이다.  ‘토’는 첫째 날~일곱째 날까지 모두 일곱 토막으로 나눠져있다.  암지에 흰 글자로 ‘첫째 날’, ‘둘째 날’ 이렇게 뜰 때마다 사람들이 한숨을 몰아쉬고 ‘집중하자’고 허리 펴며 다짐하는 모습 조금은 안습….

감독님들, 아직 세상 끝나면 안된다.  나 연애 해야 함.  우리나라 통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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