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수업 시간에 조 선생님이 브루노 무나리가 수학을 visual art/놀이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위의 책에서 무나리의 시도는 ‘이탈리아’에서 ‘특정한 손짓’이 담고 있는 ‘의미’를 ‘책의 형태(사전)’로 묶은 것이다.  우리는 입으로, 눈으로, 몸으로 말할 수 있고 귀로, 온몸으로 들을 수 있다.  손에서 눈으로, 눈에서 머리로 옮겨가는 어떤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그렇고 그런 사이’ 뮤직 비디오에서는 비트에 맞춰 손동작이 변한다.  ‘기웃기웃 하지를 마~’ 정도만 빼면 사회적/보편적인 손언어의 규약만으로 뮤비를 구현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우리는 특정 손동작의 visualization과 ‘동시에’ 가사를 귀로 듣기 때문에 손동작과 가사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을 뿐.

세범이가 만든 ‘그렇고 그런 사이’ 책에서는 ‘손동작 n’과 ‘손동작 n+1’ 사이의 잔상을 생략했다.  지금 그 책 사진을 찾아서 다시 보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다시 찾으려니 못찾겠네;  아무튼….  책장을 넘기면서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그 불가능을 보여주는 것이 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고 거꾸로 생각해 보았다.  그 책을 본 다음에 뮤비를 보면 동작과 동작 사이가, 적나라한 잔상이 새롭게 보이고, 그러한 잔상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었는지가 보인다.

뱀파이어 윅엔ㄷ의 에이펑크 뮤비 1분 39초 정도부터 나오는 손들을 보면 – 장기하들의 손이 가사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과는 달리 – ‘음정’과의 연결 고리가 훨씬 강하다.  가운데 아래쪽의 분홍색 손은 튠 높낮이에 따라 손의 높낮이가 달라지며 양옆의 손은 리듬을 표현하고 있다.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장기하나 vw이나 비슷해 보이는데 말이지….

집 엘리베이터에는 아라비아 숫자 바로 아래에 점자로도 층수가 표기가 되어있다.  만 9년 넘게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점자 숫자를 몇 개 익혔는데, 그게 나는 손으로 만져서가 아니라 눈으로 보고 모양으로 익혔다는 걸 알고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이런 일기를 쓴다.  점자를 보면 무슨 숫자인지 대충 알지만 만지면 모른다는 게 이상하다.  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수화로 대화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서는 목청을 울려 ‘소리’와 함께 수화를 하시는 거였다.  그것도 신기했다.  tv에 나오는 수화하시는 분도 자주 입으로 뭔가를 말하는 듯한 제스처를 하는데 그건 무슨 입모양일까?  소리를 뺀 말하기….  아….  됐고 누군가의 왼쪽에 서서 오른손으로 그 사람 왼손을 잡은 채로 걸어다니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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