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매우 뜸들이고 있는 내 모습이 이상했다.  ‘맞나?’ 싶고.

내 옆에서 큰 영향을 끼치며 꽤 긴 시간을 함께한 한 사람으로부터 듣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당시에는 부정할 필요가 없는 견해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게 긍정적인 감탄이건 부정적인 실망이건, 그 사람만 볼 수 있는 내 모습을 그의 감각이 어떻게 수용했는지 들어보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방법론적 개인주의라는 말도 낭만적으로 들린다고, 일기장에 멋대로 썼다.

그러나 나에 대한 그의 말이 그 순간 전적으로 옳았다한들, 그 한 마디가 ‘나란 사람’을 언제까지나 대표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 아니냐고?  난 좀처럼 변하지 않으리란 막연한 믿음이 강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를 오래 본 사람의 한 마디 말이 나의 어떤 면을 날카롭게 설명하면,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라는 믿음이 더 강해지더라.

솔직한 생각을 두서 없이 적으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 뒤에 숨을 가능성을 처음부터 없애고 싶었다.  그의 말과 내 말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나의 새로운 면에 실망하는 그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실망을 돌이키거나, 그것도 안되면 다른 무언가로 그가 받은 실망을 보상해주고 싶었다.  그가 가졌으면 하는 프레임으로 나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한다.  인정한다는 걸 오늘 알았다.  너무 오래 걸린 것에 대해 내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내가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 내가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1차적인 무엇이다.  배아픈 것과 비슷한….  사람에게는 여러 단면이 있고 그 단면이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맞닿아 유일한 입체를 만든다.  점, 선, 면 – 모든 요소가 조금이라도 변하면 그 입체의 모양이나 궤적에 영향을 끼쳐 또다른 유일한 입체가 된다.  요즘에는 개인적으로 나의 어떤 면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해 주는 사람이 고맙다.  최소한 나를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시간이 흐르면 적용하기 어려운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용기까지 내주니 고마운 일이다.  순간을 만나게 해 준다.

또 하나,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었다.  정말 간절히 원하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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