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오해 여부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인은 타인이 가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라 여겼다. 오해의 자유도 존중하겠다며(물론 오해의 책임도 전가하며) 케쎄라쎄라 놔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의아했고, 이내 뭔가 오해할 수도 있는 사람으로 비춰진 자신이 아주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게 나의 일시적인 오해였다고 이해한다. 내가 베풀어본 적 없는 배려를 감사히 여기기까지 하루가 걸렸다. 상대방을 이해시킬, 또는 오해로부터 끌어당겨주기 위한 말을 하려면 아주 사소하더라도 무릅써야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나는 그렇다. 설령 그에겐 양치질 습관보다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언정, 그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가 아닌 그 자신을 위해서 한 말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관련 없는’ 이에게는 져야할 의무 또한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내 체온이 내가 싸는 글의 온도만큼만 됐어도 오해의 가능성을 내비치진 않았을텐데. 역시나 가정법은 효력이 없다! ㅎㅎ 대신, 그 눈빛이 바꾸게 될 것들을 잠시 상상해본다(내가 이래서 문젠가?!). 부러울만큼 특별한 눈동자였다. 다 잘 되시길 마음으로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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