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rnica is a painting by Pablo Picasso, in response to the bombing of Guernica, Basque Country, by German and Italian warplanes at the behest of the Spanish Nationalist forces, on 26 April 1937, during the Spanish Civil War. The Spanish Republican government commissioned Pablo Picasso to create a large mural for the Spanish display at the 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et Techniques dans la Vie Moderne (1937) Paris International Exposition in the 1937 World’s Fair in Paris.

Guernica shows the tragedies of war and the suffering it inflicts upon individuals, particularly innocent civilians. This work has gained a monumental status, becoming a perpetual reminder of the tragedies of war, an anti-war symbol, and an embodiment of peace. On completion Guernica was displayed around the world in a brief tour, becoming famous and widely acclaimed. This tour helped bring the Spanish Civil War to the world’s attention.

http://en.wikipedia.org/wiki/Guernica_(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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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는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현대 미술 작가다. 그는 92세라는 나이로 장수를 누리고 생을 마쳤지만 생전에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조르주 브라크(1882-1963)와 함께한 ‘입체주의’의 탄생은 인류 조형의 역사에서 일대 혁명적 사건으로 기억되며, 피카소는 브라크와 더불어 그 ‘혁명’의 리더로 기록되어 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이 한창 벌어지던 1937년 4월 26일,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을 담은 그림이다.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좌파 인민전선을 소비에트 연방이, 우파 프랑코파를 나치와 이탈리아가 지원하는 양상으로 전개된 것으로, 1939년 프랑코파의 승리로 종전될 때까지 스페인 전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때 바스크 족의 수도인 게르니카가 나치에 폭격당하면서 1500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피카소가 분노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전투로 인해 군인들이 아니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점. 그는 폭격이 보도된 후 바로 <게르니카> 작업에 들어가 5월 1일 이를 위한 첫 스케치를 내놓는다. <아비뇽의 처녀들>과 함께 피카소의 2대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게르니카> 작업에 들어가기 직전, 사실 피카소는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 스페인관에 들어갈 작품을 의뢰받은 상태였다. 피카소는 이를 위해 파리 그랑 오귀스탱 가에 작업실을 얻어 세로 349.3cm, 가로 776.6cm의 대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게르니카>에서는 나치의 폭격이나 내전의 구체적인 참상과 그 과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정형적이지 않은 인물과 대상의 표현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작품을 이루는 각 요소들의 조형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의 흑백 톤의 컬러만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극대화되었다. 캔버스 왼쪽부터 보면 불이 난 집, 죽은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멍한 황소의 머리,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광기에 울부짖는 말, 상처 입은 말, 램프를 들고 쳐다보는 여인, 여자들의 절규, 분해된 시신 등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뒤엉켜있다. -황석권/《월간미술》 기자

크기는 349×775cm이며, 에스파냐의 소피아왕비 미술센터에 소장되어 있다.

게르니카는 에스파냐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로, 1937년 에스파냐내란 중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하여 폐허가 되었다. 마침 그 해에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만국박람회의 에스파냐관(館) 벽화제작을 의뢰받고 있던 피카소는 이 조국의 비보에 접하자,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 ‘게르니카’라고 이름붙였다.

이 작품은 파리만국박람회를 비롯하여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프랑코 체제가 되자,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는 그림반입을 거부하고, 1939년 에스파냐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회복 후 반드시 프라도에 전시할 것 등의 조건으로 이 작품을 뉴욕 근대미술관에 무기한 대여형식으로 빌려주었다. 프랑코의 독재가 계속되는 한 조국과 화해할 수 없다고 한 피카소의 신념으로 인해 1981년에야 에스파냐에 반환되어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되었다가, 일부 정치인과 예술가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관상의 문제로 1992년 소피아왕비 미술센터로 옮겼다.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입은 말, 버티고 선 소는 피카소가 즐겨 다루는 투우의 테마를 연상케 하며, 흰색·검정색·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다.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교묘하고 치밀한 대비효과에 의해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된다.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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