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다면 1~2학기 커리큘럼의 모든 수업 앞, 뒤로 조금이나마 생각해보려 한다.

 

***pre***

black & white film

0 & 1:digital

chess game

수묵화,  서예

b/w in nature(or around us): animals(zebra, panda, etc.), food(충무김밥?-_-)

Black can be defined as the visual impression experienced when no visible light reaches the eye. (This makes a contrast with whiteness, the impression of any combination of colors of light that equally stimulates all three types of color-sensitive visual receptors.)

Pigments that absorb light rather than reflect it back to the eye “look black”. A black pigment can, however, result from a combination of several pigments that collectively absorb all colors. If appropriate proportions of three primary pigments are mixed, the result reflects so little light as to be called “black”.

This provides two superficially opposite but actually complementary descriptions of black. Black is the lack of all colors of light, or an exhaustive combination of multiple colors of pigment.

회화사에서 b/w로 그린 것을 찾아보면: many!  anything with black drawing/painting materials(s.a. pencil, coal, etc.) on white canvases.  not just drawing – print, woodcut, engraving, etching, lithograph….

black & white symbolism in literature:

aubrey beardsley’s illustration for edgar allan poe’s 「the black cat」
john tenniel’s illustration for lewis carroll’s 「through the looking glass」

이분법적 사고, 흑백논리: symbol로서의 black & white

black과 white의 상호관계: black swan ↔ all black, all white

color 안료가 나오기 전, color 사진이 나오기 전, color 필름이 나오기 전: 그러나 color가 발명된 이후에도 people still use black and white, why?

 

***during the session***

작업을 하면서 어떤 느낌이 나는지에 집중하기.

완성하는 게 아니라 느낌을 찾아내는 것.

머리로(x), 눈과 손으로(o).

***critique***

물성(物性): 1.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  2. <물리> 물질의 전기적 자기적 광학적 역학적 열적 성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3. <철학> 자아에 대립된 물건의 보편적인 성질.

물성이 강한 것들.

가죽 자르고 남은 쪼가리,  머리카락, 까만 비닐봉지, 김, 철사 등: readymade –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자기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택하는 과정 = 작업의 본질.  Roue de bicyclette by Marcel Duchamp.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와 자전거 바퀴의 결합. 이처럼 낯설고 예상치 못한 조합만으로도 훌륭한 미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마르셀 뒤샹이 처음 제시한 ‘레디메이드’ 개념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레디메이드는 말 그대로 공장에서 대량 생산 된 기성품을 말한다. 뒤샹은 이런 기성품을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의 의도는 기성품도 예술가가 ‘선택’해 ‘제시’한다면 애초에 그것이 갖고 있던 기능이나 용도와는 무관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가는 일상 생활에서 ‘발견’한 물건에 독창적인 관점과 아이디어를 투영함으로써 기성품의 실용적 의미를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뒤샹의 이런 발상은 그 동안 ‘물질’에 의존했던 미술(품)의 의미를 ‘정신’ 쪽으로 기울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질에서 정신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진 미술은 표현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했다. 이제 작가는 굳이 직접 무엇을 만들거나 그리지 않아도 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라도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전거 바퀴>는 조각으로 볼 수 있다. 나무와 금속을 결합한 훌륭한 조각-미술 작품인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움직일 수도 있다. 자전거 바퀴를 돌리면 가운데 바퀴살 모습이 사라졌다가 서서히 멈추면서 다시 제대로 보이게 된다.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시점에 머물러있던 조각의 감상 범위를 확장시킨 것이다. 이전까지 돌이나 나무, 금속처럼 딱딱하고 견고한 재질의 조각 작품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움직이는 조각, 이른바 ‘키네틱 아트’의 시초인 셈이다. 칼더의 움직이는 오브제 ‘모빌(mobile)’이나 백남준의 로봇 작품의 원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움직임과 운동에 대한 뒤샹의 관심과 연구는 다른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신부>(1912), <회전하는 유리판들>(1920) 등이 좋은 예다.

뒤샹은 <자전거 바퀴> 외에 레디메이드를 활용한 작품을 여러 점 발표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 병을 세척해서 걸어놓고 건조하는 병 건조대(1914), 눈을 치우는 눈삽(<부러진 팔 앞에서>, 1915), 남자용 소변기(<샘>, 1917)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뒤샹의 손을 거쳐 애초 갖고 있던 기능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오브제로 새롭게 탄생했다.  -월간미술 이준희 기자

그리는 것과 물건을 붙이는 것이 뭐가 다른가?  오브제 자체의 물성이 강해서 소재의 선택만으로 작업이 유기체처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ex. 머리카락을 붙여서 만들 경우: 머리카락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강도, 구부러지는 정도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물체 자체의 특성을 이용할 수 있다.  ex. 모빌, kinetic: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에 따라 달라짐(바람은 내가 조절할 수 없음), 시선에 따라 form이 바뀌면서 움직인다(마치 모빌이 살아있는 유기체인 것처럼) ← 누군가가 살아있게 만든 것이다!

아주 가는 실로 촘촘히 짜여진 실크 + 흑백 사진: matching – 어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말하는 ‘잘 어울린다’가 혹시 ‘보편적이다’는 아닌지.  정말 잘 어울리는 것인지.

“보고 있길래 집어왔다”: 자세히 들어가면 모든 것이 특별해진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 관심을 기울이는 것.  누군가의 무엇.  소홀히 끝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들이 볼 때는 당장 쓰레기통에 처넣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우리들의 조물락조물락 나부랭이.  “관점”이 중요하다.  ex. ‘mother’ series: 죽은 멸치, 짜부라져서 흩어진 쥐 사체, 날개 한 쪽이 없는 나비 – 이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엄마’였다는 컨셉.  그렇게 바라본 사람에게는 그 사체들이 특별하게 보인다.

action painting이라기 보다는 dropping.  캔버스와 작가 사이의 ‘거리’를 만들었다.  모네의 그림은 가까이에서 보면 그게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거리를 만들었다.  모네 왈, “나는 사물에 대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물과 자신 사이에 있는 공간의 구조를 그렸다”.  작품과 작가를 유격시키기.

detail of “self portrait, 2000” by chuck close, photograph by michele leight

the hyperrealism artist chuck close says, “나는 추상화가요”: 그 작업에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느냐가 point.

“제일 튀는 이 한 개”: black and white를 표현하되 color를 쓰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c, m, y 등 여러 색상이 다 겹쳐져 black을 이루고 있다.  분명 이 안에는 black이 있다.  표현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black의 특성과 본질을 고려한 의도였길 바란다 – 네, 그것이 제가 의도한 바입니다.

“자연은 순수하다” – true or false?: 자기 상황에서 그것이 그렇다는 것이 증명이 안됐으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는 artist에게 다른 방식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artist의 할 일이다.

완벽하면 제품이 되고 실패하면 작품이 된다.

(energy caffe in england)

“어떤 생각에 의해 물감을 옮겨놨느냐”: 생각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물감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짐꾼이 아니다.  ‘ 이것이 이런가’를 생각한다면 ‘예쁘게’, ‘잘’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post***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지?  항상 하는 게 생각인가.  그게 내 생각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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