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요, 아줌마.  이제 확실해요.  암은 아니래요.  의사 선생님이 분명히 아니라고 했어요.”

로자 아줌마는 환하게 웃었다.  이제 이빨도 거의 없었다.  미소라도 지어야 아줌마는 평소보다 덜 늙어 보이고 덜 미워 보였다.  그녀의 미소에는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주는 무엇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유태인 대학살 전인 열다섯 살 적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진의 주인공이 오늘날의 로자 아줌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로자 아줌마가 열다섯 살의 사진 속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역시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어 양쪽으로 입을 벌리고 잔뜩 찡그려가며 생각했다.  이런 모습일까?

아무튼 나는 로자 아줌마에게 암이 아니라는, 그녀에게 가장 좋은 소식을 전했다.

로자 아줌마의 생이 아줌마를 파괴했다고 생각하는 모모.  자신의 생에게 짓밟힐 상상을 하는 어린이 모모.  상징과 암시가 가득한 모모의 여러 행위와 사고 중에서 이 장면이 모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生이 누군가에게 무슨 일 – 대개 끔찍하기만 한 – 을 하고 있다는 관찰이 어떻게 생겨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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