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오랜만에 할머니를 찾아뵈었을 때 처음에는 누군지 못알아보셨지만 손을 잡은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는 집안 식구들 다 잘 있냐고 물어보셨다.  아마도 새로 오신 간호사 아주머니께서 누굴 뵈러 온 거냐고 해서 할머니 성함을 댔더니, 어쩐지 닮았더라고 하신다.  병문안을 자주 오시는 우리 엄마랑 내가 닮았다는 건지 입원해계신 할머니와 내가 닮았다는 건지.  옆에 앉아 귤을 까서 먹여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곱은 손을 느리게 흔드셨다.

며칠 전.  활활 타버릴 것처럼 분노로 달아올라 데일 듯 뜨거운 눈물이 후룩후룩 흘렀다.  막 비가 오기 시작한 순간 쌩쌩 달리는 차 안에서 보이는 물방울들 점선을 얼굴에 붙이고 동물이 내는 소리를 허공에 지껄이다 절하듯 엎드려 꺼이꺼이 울었다.  옆으로 스륵 넘어져 겨우 잠들었다가 다리가 저려서 정신이 떠졌지만 눈을 뜨기도 전에 눈물부터 났다.  좋은 모습이 없는데 어떻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어.  나를 화나게 하는 다른 사람들이 말을 못하게 할 수 없다.  죽고싶게 만든 사람 덕에 미치도록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해도 찾아가 울릴 수도 없다. 

이런 게 슬픈 것인가보다.  아니면 무력감인가?  너는 아마 모를 종류의 느낌이라고 생각해본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어보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거 하나는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내게 남았을까 잠시 의아했지만 내 경우에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던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럼 이제 나에겐 아이들과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걸까?  좀 더 관찰해봐야겠다.

에너지를 주체할 수가 없다.  지하철/버스 두 세 정거장 정도는 웬만해선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니고 책도 평소보다 많이씩 들고다니고 모든 서류를 완벽히 파일에 철해놓고 저녁 때는 중랑천을 뛰고 모든 영수증을 공책 몇 권에 붙여서 수입지출 계산을 한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친목회비, 청약, 적금, 용돈, 아프리카 후원비, 통신료, 급식비, 그냥 식비, 술값, 책값, 화장품값, 옷값, 교통비…  결과적으로는 에너지 때문에 피곤하다.  시간도 더 모자라는 것 같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일주일은 3월이 4월로 되는 주다.  얼마 전 학교 갔다 오는 길에 화분과 배양토, 꽃씨 두 종류를 사놓았는데 아직 심지를 않았다.  무심코 골라 들고 온 꽃씨봉투 두 개에 각각 꽃말이 적혀있는 것을 살 때는 몰랐다.  다알리아(Dahlia,국화과): 당신의 마음을 알아 기쁩니다.  봉선화(Impatiens SPP, 봉선화과):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둘 다 마음에 안든다.  다알리아의 파종기는 2~4월, 봉선화의 파종기는 4월 중순~5월이니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좀 더 미루었다가 심어야겠다.  어차피 심을거면서…

참, 목요일은 개교기념일이다!  개교기념일이 학교마다 일 년에 두 세번 정도 있으면 좋겠다.  학교에게 음력 생일 양력 생일 다 차려주고 싶다.  그날 저녁 때 원희하고 인디다큐 폐막식에 갈까 어쩔까 하고 있는데 보고파 찜해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가 1회차라 중간에 시간이 너무 떠 고민 중. 

이제 수행평가와 학부모/장학사/교원 공개수업의 시기가 다가온다.  4월부터는 정규 교육과정과 별개로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두 반을 더 맡게 될 예정이다.  영국에서 온 Mark와 co-teaching이다.  첫날 마크 선생님이 “코올 미 마악”이라 한 것은 “Call me Mark”였다.  걱정이다.  storytelling반이라서 철판과 연기력이 필요하다.  걱정이다…  무슨 걱정을 하든 그 걱정과 다른 종류의 걱정이기만 하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뭔가 좀 나을 것 같다고, 다들 생각할까?

어제부터 이틀 째 Belle & Seba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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