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인형극으로 돈죠반니를 한다고 해서 냉큼 표를 샀다.  20일 3시에 신은선과 보러 갔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돈죠반니의 마지막 클라이막스만 나와서, 왜 거대한 석상이 벽을 뚫고 나와 돈죠반니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지, 또 그때 나누는 대화는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다.  아리아만 들으면 그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는데, 가사가 ‘내 눈 앞에 다시 한번만 나타나면 다 부숴버리겠어’, ‘내일 새벽 즈음 되면 내가 정복한 여자 리스트에 한 12명 정도 추가되겠군’ – 이렇게 철저히 통속적이고 과장이 많으며, 그래서 우스꽝스럽다.

2막으로 구성된 모차르트의 오페라이다.  1787년 다 폰테의 대본에 의해 작곡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29일 프라하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는 에스파냐의 호색 귀족 돈 조반니(돈 후안)를 주인공으로 한 것으로 탕아에다 무신론자인 돈 조반니는 사랑의 편력을 하던 중, 돈나 안나에게 추근거리다가 그녀의 아버지 기사장(騎士長)의 질책을 받고 결투 끝에 그를 찔러 죽인다.  그 후에도 시골 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등 못된 짓을 계속한 그는 묘지에서 기사장의 석상(石像)을 보고 만찬에 초대하였는데, 그날 밤 집으로 찾아온 석상을 보고도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마침내 업화(業火)에 싸여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비록 이탈리아풍의 희가극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정가극풍의 노래도 있고, 특히 인물의 성격묘사에 있어 독특한 묘미를 보이고 있으며, 서곡을 비록하여 <카탈로그의 노래> <당신의 손을> <샴페인의 노래> 등은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1962년 12월 국립오페라단(임원식 지휘)에 의해 국립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실제 인간이 나와서 돈죠반니라는 인물을 연기한다면 그 사람이 망나니 바람둥이 같아서 미워보였을 것 같지만, 줄이 달려 움직이는 인형들이 그런 아내의 유혹 캐릭터를 연기하니 별로 밉지가 않고 마냥 귀여웠다.  모든 음악과 성악은 미리 레코딩해 놓은 것으로 틀었고, 마리오네뜨 인형 연기자는 지휘자 모짜르트까지 합하면 약 7명 정도였다.  오페라 들으랴, 돈죠반니 내용 자막 읽으랴, 인형들이랑 인형 움직이는 사람들 손 구경하랴…  100분 동안 웃음과 긴장이 끊이질 않았다.

저렇게 토시 낀 손들도 함께 보는데, 두 손과 인형은 일심동체로 움직여서 극중 인형이 결투하다 칼에 맞고 푹 쓰러지면 그 인형을 움직이던 사람도 죽은 듯이 앞으로 축 고꾸라져 팔을 늘어뜨린다.  이런 설정을 구경하는 것도 신기했다.  이것은 관객이 ”인형의 죽음 = 사람의 죽음”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인형이 살아있다고 믿게 하는 효과를 거둔다.  단, 살아있는데 누구로 살아가느냐 – 바로 그 인형을 살아있게 만드는 조종자(?)의 분신이자 육체적 자화상으로.  인간이 오른 팔을 들려는 의지를 인형에게 전하는 척수가, 바로 인형과 인간 사이의 줄이다.

한 사람이 어떤 인형의 한쪽 다리만 굽혀 다른 인형에게 키스를 하고, 비누거품 목욕을 하고, 음악에 맞춰 노래를 하는 행위는 인형이 살아있다는 관객의 착각을 더욱 공고히한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와 말을 하듯이, 그들은 오페라가 끝나고 무대 위에 올라와 인사를 할 때도 자기가 손을 흔들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명을 준 인형들이 대신 인사를 하게 했다.  이 사람들은 톰 행크스가 윌슨을 떠나보내며 흘리는 눈물을 백번 이해할게야…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