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어디 최종 면접 떨어지고나서 분한 마음에 거기서 주최하는 공모에서 꼭 1등을 하는 걸로 복수하리라 – 나는 상금이라도 받아야 위로가 되겠다 – 이런 불순한 동기로 제한된 시간 안에 내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조금 무리를 했다.  잘 안되더군.  그러나 하면서는 뭔가 될 것 같은 이상한 믿음이 생겨 멈출 수가 없었고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 이렇게 하다가 될 것 같은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계속했다.  평소에 게으르다보니 어쩌다 탄력 받으면 멈추기가 싫은 마음에, 판단을 흐린 채 진행하고 있다는 걸 다 지나서야 아는 거.  그리곤 꼭 내 인생에 그 공모전에 떨어지기로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_- 공모에 떨어졌다.  그러나 다음에 비슷한 일을 할 기회가 생기면 그 일이 있기 전의 나보다 익숙하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시도를 하기 전과 후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 정말 뿌듯했고 기뻤다.  나만 알 수 있는 그런 차이가 생겨났다.  실패를 억지로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런 변화는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 fact다.

결과중심주의 교육과정과 입시를 성공적으로 겪어내면서 얻을 수 없는 것은 곧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어느 쪽을 잃는 것을 더 참아낼 수 있느냐로 선택을 해야한다면 나는 결과 중심 교육을 제일 먼저 버릴듯?  한 사람의 처음과 끝을 비교해서 성장한 사람들을 격려해야지 모든 사람들의 끝을 줄세우는 평가는 출발이 달랐던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절망을 준다.  구성원 중 몇 명만 절망한다 해도 그들이 그로 인해 약간은 달라진 가치관을 갖게 된 채 사회 안에서 살아갈 때 그 사회도 뭔가는 달라질 거 아냐.  정책이라든지 관습이라든지…

이건 다른 얘기지만; 몇주 전 ‘루저의 난’을 일으켰던 미수다 프로그램 ㅇㄷㄱ 학생의 발언은 신장(height)이라는 데이터마저 서열화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장 분포가 자연스럽게 가우시안 분포를 따르는 것이며 특정 데이터 이상과 이하에 속하는 샘플집단간의 관계가 winner/loser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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