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거더군.  어제 동대문 운동장에서 역삼쪽으로 가야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을지로였다.  반대편으로 넘어가 역삼 GFC에 무사히 도착했다.  조금만 늦게 정신을 차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하니 철렁했다.  한번 당해 봐야…?  이제 정말 일찍일찍 다녀야겠다.  어중간하게 뜬 시간을 역삼에서 보낼 것이냐 홍대에서 보낼 것이냐 잠깐 고민하다가 홍대로.  이른 시각에 도착해버려서 좀 걷기로 했다. 

난 걷는 게 좋다.  별로 걷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조금만 걸어보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곳이, 찾아보면 서울에도 많다.  같이 갔던 곳 보다 같이 가고 싶었던 곳이 더 많다는 건, 욕심 많고 조급한 내 탓인지도 모른다.  내 탓이라는 건 아니다.  아니지만 아직도 어딜 가더라도 집에 오는 길이 멀다.  결국에는 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  상처나면 아프고 기다리면 지치고 잘해주면 좋아하고 안그러면 속상하고 시간 지나면 배고픈, 그냥 사람.  나는 아닌 줄 알았다.  아니고자 하는 진심만 있다면, 지치지도 않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 배고프다. 

아무튼 홍대입구역에서 홍대 정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주차장길로 내려와 신촌쪽으로 꺾었다.  케밥집을 지나고, 하얀 개를 쓰다듬었던 옷가게 앞을 지나고, 칼디를 지나고, 빵을 지나고, 털 많이 빠지는 고양이들이 사는 꽃집을 지나고, 산울림 소극장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서 프리버드까지 갔다가 7시 반에 맞춰 들어왔다.  오늘 지난 길을 지도에 그려보면 두 줄이 되는 곳이 드문드문 있겠네.  공기가 안좋았는지 눈이 아주아주 아팠다.  처음 듣는 노래와 노래 사이의 간격이 아주 짧게 느껴졌다.  여운이 머물 틈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건 아마 내가 너무 피곤해서 흡수를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이었겠지…  가만히 앉아서 듣다보니 몸이 편해져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 들렸다.  눈이 아파서 아예 감고 들었더니 더 잘들리는 걸 보면 확실히 여러 감각을 동시에 사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야.

블랙백, 빅터 뷰, 도둑새, Dringe Augh의 순서였다.  빅터 뷰는 a로 시작해서 a + b + c – c – b = a  로 끝나는 과정이 신기했다.  한 가지씩 리프와 리듬이 추가되는 순간도 좋았지만 후반부에 하나씩 들어내서 결국은 한 가지만 남는 순간이 더 좋았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공연의 마지막에는 편하게 숨 쉬면서 다리 쭉 펴고 눈 감고  들었다.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다.  끝나고는 스웨덴에서 오신 Augh씨의 손님친구들 안나, 요한슨씨와 함께 차를 마셨다.  두 분 모두 선한 인상이었다.  내가 3주 동안 서울에 머문다면 뭘 하면서 보낼까?  택시를 보내고 다시 그 다리를 건너 프리버드를 지나 길을 건너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와서 푹 잤다.  하루종일 반복했던 몇 가지 생각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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