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한국 정치에 대한 ‘긍정과 낙관’을 위해

제1장)  왜 한국 민주주의는 경이의 대상인가? 
쓰레기에서 핀 장미꽃 / ‘삼십 년에 삼백 년을 산 사람’ / 한국인의 낮은 자부심 / 한국 민주주의의 ‘이웃 효과’ /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종교였다 / 과대평가 · 과소평가를 넘어서

제2장)  왜 한국은 ‘정치과잉’ 사회가 되었는가?
조선 말기의 정치 / 해방 정국의 정치 / 입신양명의 변질 / ‘정치는 아편과도 같다’ / 정치불신 · 혐오를 넘어선 정치저주 / 정치는 욕망 표출의 특수 영역이다 / 한국인의 강한 ‘인정 욕구’

제3장)  왜 유권자는 지도자에게 과도한 기대를 갖는가?
대중의 ‘미란다’에 대한 집착 / 대통령에게 환호 보내기 / 카리스마, 제왕적 대통령, 위임 민주주의 / 카리스마에 대한 갈망 / 왜 한국 정다은 포장마차인가? / 정치는 자해산업 / 한국의 ‘인물중심주의’ 문화 / 한국의 ‘깡다구’ 문화 / 한국의 ‘지도자 민주주의’ / 정당정치를 살리기 위한 방안

제4장)  왜 젊은이들은 투표를 포기하는가?
46%로 떨어진 제18대 총선 투표율 / 참여 열정의 부메랑 / 한국의 선거회의론 / 한국 정치가 빠져 있는 악순환의 함정 / ‘공천혁명’의 겉과 속 / 왜 유권자들은 ‘물갈이’에 환호하는가? / 유권자의 욕망을 탓하기 전에 / 과두제의 철칙 / ‘영구 캠페인’과 ‘반감의 정치’

제5장)  한국 민주주의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한국 학계에 ‘한국’ 학자가 있는가? / 소용돌이 민주주의 / 쏠림 민주주의 / 욱 민주주의 / 우뇌 민주주의 / 심정 민주주의 / 홍수 민주주의 / 바람 민주주의

제6장)  이념이 파벌을 만드는가, 파벌이 이념을 만드는가?
이념 논쟁의 한계와 위험 / 왜 중간을 용납하지 않는가? / ‘이념’과 ‘이익’의 유착 / 한국에서의 보수주의 /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 왜 ‘적 만들기’가 이루어지나? / 정치권의 ‘증오 마케팅’ / 소통은 경청이다 / 보통사람의 권력감정 / 권력감정은 타락하기 쉽다 / 자기희생과 순수성의 함정 / 광신도들의 ‘적대적 공존관계’ / 비판의 양극화 법칙 / 인지부조화 이론 / 매몰비용 효과

제7장)  여론은 어떻게 형성되며, 어떻게 바뀌는가?
여론의 정치지배 / 한국은 ‘여론조사 공화국’ / 유권자의 잦은 변심 / 한국 여론 형성 구조의 10가지 특성 / 기회주의의 역사적 · 사회적 배경 / 한국의 각개약진 문화 / 투표와 여론의 괴리 현상 / 한국인은 진정 정쟁을 혐오하는가? / 언론의 정파 저널리즘

제8장)  지방자치의 성공 없이 정치 발전이 가능한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환상 / 중앙의 ‘빨대 정당’ / ‘빨대 정당’으로부터의 독립 / ‘참여의 불균형’이 문제다 / ‘지역주의 해소’ 10대 방안 / 중앙정부 인사 · 예산의 투명성 · 공정성 / 공공적 연고주의 / 지역 거버넌스 체제의 구축

제9장)  대학입시는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금 교육은 미친 교육이다’ / 사교육 열풍은 우리의 숙명인가? / SKY 출신의 사회 요직 독과점 / 진보적 근본주의자들의 보수주의 / ‘경로의존’의 덫에 갇힌 한국 사회 / 학벌주의를 긍정하는 언론의 보도 프레임 / 학벌만 좋은 ‘천민엘리트’

제10장)  대중지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참여 민주주의 논쟁 / 참여 민주주의의 왜곡 / 촛불집회 논쟁 / 국민소환제 논쟁 / 민주주의와 운동 / 대중지성 논쟁 / ‘대중의 지혜’ 논쟁 / 대중의 지혜가 지도자보다 안전하다 / 포지티브 캠페인도 필요하다

맺는말)  ‘정치교육’으로 ‘정치혁명’을!
독일의 정치교육 / “시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 당파적 열정이 가로막는 정치교육 / 박정희를 넘어서 / 지방의회를 정치교육에 활용하면 안 되나? / 민주주의는 한판 승부가 아니다

 

 

한국 정치의 네 가지 얼굴: 

첫째, 냉소와 혐오의 대상으로서의 정치다.  주로 삶에 허덕이는 서민들이 정치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사실 부자들은 정치에 대해 화를 내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부자들 역시 애국심에서 한심한 정치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곘지만 서민들만큼 절박하진 않을 것이다.  

둘째,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서의 정치다.  기업들, 특히 재벌들이 갖고 있는 정치관이다.  재벌은 정부와 정치권의 경제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느냐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직·간접적 로비활동을 통해 정치를 관리 및 통제하려는 것이다.  

셋째, 열망과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정치다.  정치지망생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사회적 개혁을 위해서건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건 정치지방생들에게 정치는 열망과 숭배의 대상이다.  보통사람들이 아무리 정치에 침을 뱉어도 그 열망과 숭배는 사라지지 않는다.  

넷째, 인정과 이용의 대상으로서의 정치다.  정치에 침을 뱉는 사람일지라도 정치의 힘은 인정한다.  사적 영역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할 수만 있다면 정치의 힘을 이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pp. 5~6)

미국의 정치학자 찰스 에드워드 메리엄(Charles Edward Merriam, 1874~1953)은 정치권력이 인간 심리에 기초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미란다(miranda)와 크레덴다(credenda)라고 하는 두 가지 용어를 만들어냈다.  미란다는 권력을 미화시켜 감탄과 찬사를 자아내게 하는 다양한 내용, 즉 피지배자의 심성에 대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을 말한다.  반면 크레덴다는 피지배자에게 권력의 존재를 정당한 것으로 인식시켜 그 존속에 동의하게 하는 것으로 존경, 복종, 희생 등을 말한다. (pp. 57)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카리스마란 “어느 특정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는 구분되게 하는 특징으로서 초자연적인, 초인간적인 또는 비상한 힘과 능력을 가졌다고 사람들이 믿음으로써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당한 권력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군주 또는 부족장 같은 전통적 권력, 민중의 지도자와 같은 카리스마적 권력, 법률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부여받은 합법적 권력 등을 들었다.  (pp. 61)

…  미국 저널리스트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fire)는 카리스마를 일종의 ‘정치적 섹스어필’이라고 했는데, 이젠 정말 그런 수준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심지어 한국에선 ‘따뜻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따뜻한 카리스마’건 ‘차가운 카리스마’건 카리스마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사람들은 공포와 위기의 시대에 ‘카리스마에 대한 갈망’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카리스마에 굶주린 대중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사회적 불안정이 심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이 대표적인 경우다.  홍사종은 “불안한 세계일수록 메시아가 와서 일거에 모든 불행을 씻어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재미있는 것은 메시아 출현이 메시아를 자처하는 자의 자기환상에서도 기인하지만 늘 시대적 희생제의(祭儀)에 소요될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의 출현도 사실 ‘경제 메시아 이명박’의 이미지에 힘입은 바 크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크게 실망한 민중이 찾아낸 메시아가 오늘의 이 대통령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선거 당시 내건 ‘연 7퍼센트 성장’ ‘4만 달러, 국민성공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일거에 모든 국민을 장밋빛 희망에 들뜨게 했고, 구세주 효과에 의해 경제가 금방 좋아질 것을 예고했다.” 

이어 홍사종은 “그러나 정부 출범과 동시에 펼쳐진 고유가와 국제 곡물가격 급등 등 세계 경제 여건의 악화는 메시아 효과라는 심리적 처방 하나만으로 대처해내기에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여러 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선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경제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이 물 건너갔기 때문이다.  경제 최우선주의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며 성장이라는 뜬구름의 호나상만 잔뜩 높여 놓은 이 정권을 향해 돌아온 부메랑인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명박 경제 메시아’에 의존하는 사회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조만간 실패를 트집 잡아 자신들이 공모해 만든 ‘메시아’를 희생제물로 삼으려는 집단 사디즘적 광기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까.  메시아는 없다.  대통령과 국민이 합리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난국을 헤쳐 나갈 뿐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언론의 대통령 보도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그건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언론이 無에서 有를 만들어내는 건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 특유의 지도자 추종주의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  (pp. 6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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