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

미의식을 과감하게 파괴, 새로운 시대의 미의식을 개척

예술은 정치적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한국의 근대미술도 대상을 철저하게 응시하는 힘을 결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본이라는 왜곡된 프리즘

근대라는 시대와 격투하는 것이 진정한 모더니즘?

초상화의 일종으로서의 자화상

예술에 있어서의 현실 인식, 인식한 현실에 대처하는 방법

사회적 지위와 평가를 이용한 압박 → 생존 문제(학살, 추방, 제명), 생계 문제(재정적)

멀어져가는 감각의 모티프

* * * * *

(주요 부분 발췌)

1부 

통일독일 미술 기행

에밀 놀데가 그린 종교화 – 등장 인물들을 ‘원시 유대인’으로 그림

나치의 퇴폐 개념 ; 민족적, 도덕적, 성적 열등함

예술 표현상의 타협

키르히너 – “화가는 시인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바나나, 트라비 – 권력을 쥔 특권층만의 것

전쟁을 체험한 예술가들 – 풍자가 아니라 현실의 르포르타주

조지 그로스 – 나는 모순 속에서 소묘를 하고 유화를 그림으로써, 내 작업을 통해 이 세계가 추하고 병적이며 거짓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고 한다

너의 눈을 믿어라! – 오토 딕스와 그의 시대

<늙은 연인들>: 사이비 도덕관이나 위선을 잔혹하게 파괴하는 한편, 인간의 본능에 대해 솔직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냄.  전통적인 도덕관을 휘두르는 위선자들에 대한 불경스런 도전.

“니체는 전체주의 권력을 숭상하는 그들의 사상에 의해 오해되었다.  아니 그들이 일부러 오해하려고 한 것이다.”

어느 비평가 : 딕스의 작품은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인간의 건망증을 박살낸다”

추악한 것에 대한 강도 높은 애증

(모딜리아니와) 오토딕스의 초상화 = 독자적이고 참신한 양식 + 순간적으로 포착한 대상의 본질

“개개의 인물은 특별한 색채를 띤다”

“그림에서는 묘사 대상이 아니라 묘사 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표출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합니다.”

증언으로서의 예술 – 누가 펠릭스 누스바움을 기억하는가

확고한 유대교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기독교도 사회에 동화한 것도 아닌, 그런 이중의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비로소 시나고그를 주제로 삼을 수 있었던 것 – 이중적 정체성은 방랑과 망명의 세월을 거쳐 무서운 결말에 이르기까지 점점 날카롭게 그를 분열시키게 됨: 다수자에게 동화하려고 하긴 했으나 소수자로서의 출신성분을 잊거나 동포에게 등을 돌릴 생각은 없다는 의지의 자기 확인이었다는 해석

불확실성과 암울한 불안에 짓눌려 있던 망명자의 일상

생시프리앵 수용소 경험 – 유복한 중산계급의 아들로 자란 누스바움에게 이런 경험은 깊고도 오래 남는 충격 : 수용소 동료들 왈, “그는 수용소에 있던 시절부터 그 경험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를 믿었으며, 우리가 경험한 것은 모두 무서운 오류라고 말했다.”

‘유대인’이라는 것은 그에게 자신의 존재 자체에 가해진 직접적인 위협을 의미했다.  1941년 11월 25일 제3제국 법령에 의해 해외에 거주하는 유대인들로부터 독일 국적을 박탈하는 조치가 취해졌으며, 누스바움의 외국인등록증과 독일 여권은 모두 무효가 되었다.  “내가 없어지더라도 내 그림은 죽이지 말아주게.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나.”

<유대인 증명서를 쥔 자화상> – ‘유대인’이라는 범주에 그를 밀어 넣으려는 폭력을 자신의 자화상에 그려 넣었다.  그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외부로부터의 폭력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외치는 대신 굳이 ‘유대인증명서’를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최후의 존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유대인이다’라고.  / 다만 이 경우 ‘유대인’이란 유대교의 전통적 공동체에 면면히 계승되어온 ‘유대인 문화’에 짓눌려온 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보편적인 인간 해방의 꿈에 몸을 맡겼다가, 그 꿈이 무자비하게 부서지고 모든 것을 박탈당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 몰린 장소에서 우리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래 전 고향의 시나고그에서 얼굴을 똑바로 쳐들고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던 동화 유대인의 아들, 펠릭스 누스바움이 오랜 도망 끝에 획득한 ‘정체성’이다.  뒤러, 카라바조, 렘브란트, 그리고 고흐로 이어지는 유럽 근대회화의 자화상은 20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이런 극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 그림은 세계전쟁이 인간들을 분열시킨 20세기라는 시대 자체를 그린 극한의 자화상이다.

차갑게 식어버린 철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인간다운 감정을 억누를 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증언으로서의 예술’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펠릭스 누스바움은 세계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시대를 똑바로 응시하며 이를 그렸다.  그것도 전후가 되어서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회고하며 그린 것이 아니다.  그에게 ‘전후’는 없었던 것이다.

2부

문을 열어젖히는 자 – <토마스의 불신>에 관하여

‘욕망의 개방’ – ‘해방’보다 ‘개방’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리라.  닫힌 문을 힘겹게 열어젖힌 선구자는 카라바조이다.

카라바조가 그린 것은 신화적인 주제의 주신이 아니다.  주신으로 분장한 살아 있는 소년이다.

테르브뤼헨의 바칸티에게는 카라바조의 바쿠스가 풍기는 위험한 죄악의 냄새는 없으나, 방자한 욕망의 추구가 어쩔 수 없이 내포하는 자포자기 내지는 허무가 무자비하게 그려져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토마스의 불신> – 보면 볼수록, 예수에게는 생기가 없지만 토마스를 포함한 세 명의 형제들은 표정도 매우 생생해, 의심 많은 서민의 완전한 표상 그 자체이다.  보고 있는 나에게 전해진 것은 예수의 상처의 아픔이 아니라 타인의 상체 속에 자신의 손가락 끝을 넣고서 그 온기와 습기까지 느끼는 감각이다.  즉 이 그림을 보는 이는 예수가 아니라 토마스와 일체화한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라, 보고 만지고 확인하려는 욕망에 마음을 빼앗긴 토마스이다.  저 혁명적인 전도가 여기에서도 실행되고 있다.  카라바조는 성서의 예수 부활 이야기를 주제로 하면서도 실제로는 의심으로 똘똘 뭉친 밉살스런 서민들의 생기 넘치는 초상을 그린 것이다.  토마스는 당장이라도 집어넣은 손가락 끝을 상처 속에서 그대로 움직이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일종의 포르노그래피가 아닐까.

나는 카라바조가 의도적으로 「요한복음」의 포르노판 패러디를 만들었다고 주장할 마음은 없다.  이 그림이 반종교개혁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프로파간다였음은 잘 알고 있다.  카라바조가 경건한 마음으로 요한복음을 시각화했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카라바조는 적그리스도가 아니었다.  그는 방탕하고 무뢰한이기는 했으나, 동시에 경건한 신앙심의 소유자였다.  카라바조라면 무뢰한이면서 경건하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한 번 더 말하지만 「요한복음」의 기술에 의하면 토마스는 손가락을 집어넣지 않았다. 토마스에게 손가락을 집어넣게 한 것은 카라바조이다.  카라바조 자신이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깊숙이 집어넣은 것이다.  불타오르는 분노로 날카로운 칼을 타인의 복부에 찔러 넣듯이 말이다.  카라바조는 실제로 사람을 칼로 찔렀을 때의, 손과 손가락에 남는 싫은 감각, 그러면서도 도취된 듯한 말하기 힘든 감각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이런 상식 밖의 일을 벌일 수 있었겠는가.  여기에서도 문을 열어젖힌 것은 카라바조이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있는 십계는 그 두번째 계명에서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한다.  그리스인을 비롯해 고대 지중해 연안 지방의 이교도들은 미술작품에서도 성적 쾌락의 장면을 분방하게 묘사한다.  디오니소스적 쾌락은 식욕이나 성욕 자체뿐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그 욕망을 그린다’는 다른 욕망과 결부되어 있으리라.  유대교는 처음부터 아예 이런 욕망의 금욕을 명했던 것이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 숭배하지 말라’라는 계율은 유대교로부터 기독교와 이슬람교에까지 계승되었으나, 기독교는 서서히, 아마도 이교도 선교를 위해서, 도상을 해금해갔다.  프로파간다의 요청이 계율 그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것이다.  6세기에 예수 십자가형 도상이 등장하기 시작해, 8세기에서 9세기까지는 동방교회에서 우상파괴 운동이 있었으나, 11세기부터 예수의 수난 도상은 급증한다.  가톨릭의 시토파나 프로테스탄트의 칼뱅파가 우상을 금지했으나, 전체적으로는 성과 없는 저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는 타락한 유대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이방인(할례받지 않은 자)에의 선교를 지향한 기독교의 (일종의) 보편성이 잠재해 있는 것이 아닐까.

「요한복음」 제14장에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즉 “부디 신의 실재를 이 눈으로 보게 해주소서”라는 제자의 요구에 대해, 예수가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답하는 구절이 있다.

신은 절대적 초월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존재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자식인 예수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세상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가시화된 신체로 그리는 데서 기독교 세계의 미술은 발전했다.  바꿔 말하면 기독교 세계의 미술은 그 출생의 유래가 불가시의 신과 가시화된 신의 자식이라는 양면성과 무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토마스의 불신’이라는 주제야말로 이 양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면 보아라, 만져라,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어라’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보고 그린다’는 위험한 욕망의 문은 기독교 자체에 의해 개방된 것이다.  처음에는 (적어도 겉으로는) 신의 복음을 시각화하는 것을 유일한 사명으로 여겼던 화공과 화가들이 머지않아 보고 그리는 욕망 자체의 쾌락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한 번 알게 된 쾌락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 쾌락을 추구하는 일에 철저하게 충실한 자야말로 훌륭한 에술가인 것이다.

고뇌의 원근법 – 고흐에 관한 대담(야노 시즈야키, 서경식

“나는 붉은색과 녹색으로 인간의 무서운 정념을 표현하고 싶다”고 고흐는 아를에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이라도 폭풍이 몰아칠 것 같은 하늘 밑의 넓은 보리밭에서, 나는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과감하게 표현하려 했다.”  “어쨌든 내 그림에 나는 목숨을 걸었다.  그래서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다 – 그래도 좋다.  그러나 너는 내가 아는 한 그렇고 그런 화상이 아니다.  너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행동하며 방침을 결정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너는 어떻게 하자고 말할까?” – 사카자키 오쓰로 씨는 이를 두고, 고흐와 테오 사이에는 ‘창조하는 인간’과 ‘감상하는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단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보리 베는 사람> – “나는 이 불 베는 사람에게서, 염천 밑에서 일을 마치려고 악마처럼 싸우고 있는 이 몽롱한 인물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봤다.  인간이란 그가 베는 보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 보리 베기를 하는 그림은 전체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지만, 예쁘다기보다는 태양빛에 그을린 듯한 느낌입니다.  해바라기의 노란색도 이 불에 그을린 듯한 색에 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실 속에 자신이 정착할 곳을 가진 사람의 그림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계를 그리는 사람은 세계 속에 자신이 안심하고 머물 장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체를 남김없이 태양빛에 그을리게 하는 감각은 그 장소에 없는 사람의 감각입니다. 

…  A의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은 높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재로 <슬픔>은 너무나도 잘 어울립니다.  즉 우리가 이야기를 할 때 원형을 제공해주는 것이죠.  우리의 고뇌의 원형이 여기에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형태를 포착하기 위한 데생이 아닙니다.  포착하고자 한 것은 더 내면에 있습니다.  ‘너는 기조 쪽 인간이지만, 나는 미슐레 편이다’라고 말한 고흐, 그러나 그렇게 쓴 다음에 “150프랑만 보내줘”라고 무심하게 말해야 했던 고흐.  그랬기 때문에 고흐는 인간 고뇌의 원형을 포착할 수 있었겠죠.  그림을 그리는 인간의 행위는 인간에게 본원적인 욕구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상품가치로 환산되는 시대에는 ‘그거 얼마예요?’라거나 ‘그걸 해서 먹고살 수 있어요?’라거나 ‘그게 생활이에요?’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 그리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 그것은 ‘신’神라고 말해버리면 간단하겠지만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보편적인 것을 위해 몸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150프랑만 보내줘”라고 말해야 합니다.  즉 고흐라는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인간의 고뇌의 원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흐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가깝거나 먼 거리 감각 / 아무것도 없는 풍경을 그렸음, 중심이 되는 주제가 없음 – 고흐는 이 아무것도 없는 풍경에 매혹되었던 것 / <사이프러스> – 멀어져가는 감각뿐 아니라 시각의 중심에 육박해오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 / 고흐의 작품에만 모두가 찰싹 붙어 있음, 그림 자체가 발하는 강력함, 일반적으로 풍경화에서 볼 수 없는 것이 포함되어 있음

그 물질을 뚫고 지나가 저 건너편에 가닿는 감각 – 현세를 살아가기 위한 가치관, 혹은 필수품 같은 것이 인간에게는 있는 법이지만, 고흐에게는 그런 것을 뚫고 나아가는 감각이 있습니다.  뚫고 나가는 것은 일종의 비극이지만, 인간 중에는 그런 비극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현실로 환원되거나 현실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이건 고흐의 풍경화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고흐의 풍경 속에는 잠재적이긴 하나 멀어져가는 감각의 모티프가 있습니다.

… 광기라고 하면 광기지요.  보통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그만두고 돌아갈 것을, 보통 이런 느낌의 풍경일 거라고 하고 그만둘 것을, 고흐는 아슬아슬하게도 끝까지 가버리고 맙니다.  이 정도로 집중력을 동원하면 육체적으로도 지치고 결국에는 광적인 세계가 펼쳐집니다.  ‘미쳤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각성覺醒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시엔과의 동거 생활도 주위 사람들은 모두 지긋지긋해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고흐는 계속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 인내심 강한 테오가 참다 참다 헤어지라고 말했지만, 고흐는 헤어지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가지만, 그러고도 자신들의 관계는 애정으로 맺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보통의 배려를 뚫고 지나가는 무엇입니다.  ‘고흐라는 인간은 이미 죽은 지 오래다’라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일이죠. 

야노 씨의 말씀과 같은 맥락인지 모르겠지만, 착란이나 이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야말로 각성이며, 내부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는 것을 동생도 그저 바라보려고만 했을 뿐이라고 아르토는 말합니다.  매우 가혹한 말입니다.  이건 정신적으로 이상하다거나 건전하다는 구분을 위한 말이 아닙니다.  앞에서 나온 바리케이드의 건너편과 이쪽이라는 표현도 그렇듯이, 이래야만 한다는 명제가 있을 때, 가령 시엔과의 동거 생활도 마찬가지인데 진정한 약자와 만났을 때, 그렇게 하는 것 말고 도대체 무엇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없으니까 한다.  이게 고흐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비겁함과 보신保身, 유약함과 결단력 없음과 어리석음 때문에 거기까지 하지 않고, 앞서 말한 풍경에서처럼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얼버무려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 한다는 말이죠. 

… 다만 고흐의 감각에서 본다면 그 사람의 불행을 짊어지는 것은 똑같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흐의 현실 감각이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판단할 땐 이상하고 병든, 고흐의 특별함입니다.  그 불건강함이 역으로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이 지니고 있는 병적인 상태를 비추어 보게 합니다.

학살과 예술 –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천사들

‘인간인데 왜 학살하는가’, ‘인간이 같은 인간을 학살하다니’ → ‘인간이기 때문에 학살을 자행한다’

haunted: 어느 땅에 적절하게 묻히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비과학적인 미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자들을 적절하게 묻지 않으면 거기에 살고 있는, 즉 이승에 살고 있는 우리가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지상의 모든 곳에 ‘haunted land’가 있다.

199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기억의 싸움’이 벌어진 시대였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올바르게 묻히지 못한 채 떠도는 영혼을 억지로 밀어 넣고 뚜껑을 닫아서 잊어버리게 하려는 힘과, 그것을 파내어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진실과 정의의 전제라고 주장하는 힘이, 전세계적으로 격렬하게 싸워온 시대이다.  다니엘의 싸움은 그 시대의 보편성을 띠는 싸움이다.

누군가로부터 벗겨내 버려진 옷들은 ‘부재의 표상’이다.  이 허물들로부터 우리는 어떤 식의 상상을 자극받는가.  현대예술의 세계에서는 부재의 표상이 학살이나 전쟁을 예술적으로 표상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는 또한 적절하게 묻히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추도를 의미한다.

* * * * *

 

(감상)

2부 첫장 <토마스의 불신>을 읽으며 왜 그렇게 서양미술이 종교화를 빼고 생각할 수 없는지에 대한 궁금한 점이 조금 해결되었다.  종교화가 왜 그렇게 많아?  왜 그렸을까?  종교생활을 하지 않고 종교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보고픈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점이 항상 궁금했거든.

‘보고 그린다는 욕망’을 한번 맛본 맛난 음식의 맛을 잊을 수 없어 탐하게 되는 욕망에 견주어 설명한 부분에 볼이 화끈했다.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낙서하듯 그려서 낙서라고 믿게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나와 같이 느꼈을지도.  글쎄, 찍은 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가끔 불편한 까닭은 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상에 대한 내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때로는 말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누군가가 내 사진을 보고 그걸 읽어서 내게 말해주면 숨어버리고싶다.  그 순간 대상에게 눈길을 보낸 것은 바로 나인데, 시선의 영역을 침범당한 느낌마저 든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볼 때는 기를 쓰고 사진 찍은 사람의 시선을, 그리고 마음까지 빼앗으려 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 자리에 있는 그 사람 대신 내가 서려 한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그 순간의 바로 앞과 뒤에 무엇을 보았을까?  찍고 나서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게 되므로, 서경식씨가 카라바조의 소년 그림에 대해 ‘그림을 완성한 뒤 카라바조와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저 모델료를 주고받은 뒤 헤어졌을까?’라고 의문을 품은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궁금해 하는 거…  카라바조에겐 괜찮은 일일까?

‘화가의 신체성’에 대해 나눈 대담이 특히 좋았다.  화가가 신체성을 자각해가는 역사란 그림을 그리는 힘의 강약이 신체에 전해져 화가에게 들어오는 것을 말하는데, 터치를 남기는 것이 고전적인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역이라는 이해를 넘어서 화가의 신체 감각과 ‘시간’ 개념까지 아우른다고 한다.  ‘그림’을 ‘타인’으로 대체해 읽어도 재미있다.  318~319쪽에 있는 그 내용을 아래에 더하며 마친다.

… 야노 씨가 좋아하시는 에이큐에 대해서, 화가인 아이오가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와 에이큐의 마지막 점묘 작품은 자신의 살을 찢어서 화면에 얹어가는 듯한 행위였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비유를 들으면,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매우 신체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화가의 욕구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하고 관계를 맺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고 싶다는 욕구지요.  한 줄의 선으로 그리면 끝나버릴 것을 점으로 그린다면…….  (웃음)  점을 찍다 보면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요.

재미있네요.

화가가 그림과 관계 맺는 시간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거라고들 합니다.  아웃사이더나 정신병자가 자주 점묘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으로 말입니다.  그런 욕구가 있으면 그림 속에 들어가는 시간을 화면에 쌓아가는 방법을 만들어내게 마련입니다.

정말 그렇군요.

화면상에서의 효과도 있습니다만, 시간을 체험하고 싶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점묘만이 그런 건 아니지만요.

아웃사이더 아트의 작가들도 매우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데요.  그들의 대부분이 그림을 완성시켜 시장에서 판매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그들에게 살아 있는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런 심리나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완성된 그림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만든 인간의 신체적 과정을 느끼거나 즐길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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