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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iathan

영국의 철학자 T. 홉스의 저서. 

《교회 및 시민 공동체의 내용 · 형태 · 권력: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 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e》 이라는 부제를 붙여 1651년 출간되었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4부 47장으로 되어 있다.  리바이어던이란 구약성서 《욥기(記)》에 나오는 거대한 영생(永生)동물의 이름인데, 이 책에서는 교회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국가를 가리키며 그러한 국가의 성립을 논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되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만인은 만인에 대해서 싸우는 상태’에 있다.  이 자연권의 자기부정(自己不定)을 벗어나기 위하여 이성이 스스로 발견하는 자연법에 의해서 자연권을 제한하고 절대주권 설립의 사회계약에 의하여 국가가 성립한다고 하였다.  홉스는 전제군주제를 이상으로 여기고 있으나 그 주권의 기초를 국민의 자기보존권에 두고 있으며, 바로 거기서 자연주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이 저서는 법 · 정치사상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자연 상태 [state of nature, Naturzustant, 自然狀態] 

사회구성원이 모두 평등하며 일체의 인위적 제한으로부터 완전한 자유 상태인, 사회계약설의 전제 개념을 말한다.  국가 상태(status civilis)와 대비된다.  자연상태에서는 어느 누구의 안전과 행복도 확보될 수 없으므로, 그 구제 · 보완으로서 계약에 의한 정치사회가 성립하게 된다고 사회계약론자들은 주장한다.

자연권 [natural rights, 自然權]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가지는 천부(天賦)의 권리.  역사적으로 형성되거나 실정법에 의하여 창설된 여러 권리와 대응되는데, 근대 자연법론에 의하여 형성 · 확립된 개념으로서 인간의 천부불가양(天賦不可讓)의 권리라고 일컬어진다.  실정법론(뻡실정주의)에서는 권리란 법률로써 인정되는 경우에만 성립되므로 법률 이전의 자연권의 개념이 인정되지 않으나, 자연법론에서는 인간의 자연권은 법률 이전의 천부의 권리라고 하며, 국가가 법률로써도 이를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자연권 사상은 자연법사상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자연법사상은 그 기원이 고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근대적인 자연권사상은 영국의 홉스의 자기보존권과 자연적 자유권, 로크의 재산권과 저항권, 프랑스의 루소의 평등권사상 등, 근대자연법론과 국가계약설에 의하여 형성되면서 17~18세기 영국 · 미국 · 프랑스에 있어서 시민혁명의 사상적 지도이념이 되었으며, 시민혁명의 성공으로 근대 입헌민주주의 헌법상의 기본적 인권 보장으로 성문화되고 확립되었다.

즉,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 1776년 미국 버지니아주 헌법의 인권선언과 미국독립선언, 1789년 프랑스의 인권선언에서 표현된 자연권사상은 그 후 모든 입헌국가의 헌법에서 기본적 인구너이라는 실정법적 권리로 보장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연합(UN)헌장(1845)과 세계인권선언(1948)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자연권사상은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조물주에 의하여 일정한 불가양의 권리가 부여되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생명 · 자유 및 행복의 추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자명(自明)의 진리로 믿는다’라고 한 것이 그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프랑스 인권선언 전문(前文)에서는 ‘누구라도 침범할 수 없는 자연적인 인권’, 제1조에서는 ‘사람은 나면서부터 자유이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제2조에서는 ‘모든 정치적 조직의 목적은 인권의 옹호에 있으며, 인권은 자유 · 재산 · 안전 및 압제에 대한 반항의 권리를 보유하는 데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세계인권선언 전문에서는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고유의 존엄성과 평등하고 불가양의 권리를 승인함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 헌법상으로는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밝히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평등권(11조), 신체의 자유권(12조), 재산권의 보장(23조) 등으로 나타나고 있고, 제37조 1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고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제2항에서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그 제한과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자연법 [natural law, 自然法]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 성질에 바탕을 둔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법률 및 규범.  실정법에 대비되는 법 개념이다.  실정법이 민족이나 사회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에 비해, 민족 · 사회 · 시대를 초월해 영구불변의 보편타당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사상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으며, 특히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실정법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이견이 있었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법은 항상 똑같은 효력을 지니므로 인간의 판단에 근거한 실정법의 정이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반면에 스토아학파는 자연법이야말로 ‘올바른 이성’에 맞는 완전히 평등한 법이라고 보았고, 키케로 역시 ‘진정한 법은 모든 인간 안에 스며있는 올바른 이성’이라고 주장했다.

중세에 들어와 자연법은 그리스도교의 교의와 결합되면서 신법(神法)과 동일시되었다.  즉 자연질서는 신의 이성인 영구법이므로 인간은 이를 따라야 하며, 자연법은 이 영구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보았다.  결국 신이 정한 인간사회의 질서인 자연법은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은 실천이성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 질서를 발견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자연법도 발전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중세 교회의 권위와 구속에서 벗어나자 자연법의 개념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즉 자연법은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성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므로, 인간의 사회생활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면 민족이나 사회 · 시대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체계의 기반을 세울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처럼 법의 근원을 인간의 이성과 일치하는 사회 질서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신권설(神權說)에 대항하여 절대 왕정의 합리적 법률제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연법은 근대에 들어와 ‘자연권’ 관념으로 바뀌었고, 이 자연권이 법을 창조하는 인간의 주관적 권리로 여겨졌다.

이후 자연법에 관한 논란은 실증주의적 사상의 우위와 산업사회의 발전 및 가치관의 다양화 등 여러 사상적 · 사회적 요인으로 영향력을 잃어갔다.  현대에 와서는 실정법을 형식적으로 규정한 것을 자연법이라 하는데, 이러한 자연법론에 대해서도 법실증주의 쪽의 비판이 있는 만큼 꾸준히 연구해야 할 문제이다.

전제정치 [despotism, 專制政治]

군주 귀족 독재자 계급 정당의 어느 것이나를 불문하고, 지배자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아무런 제한이나 구속없이 마음대로 그 권력을 운용하는 정치체제.  민주주의 · 입헌주의 · 공화제의 반대개념이다.  국민의 정치참여와 자유권이 보장되지 않으며, 의회제도가 경시되거나 부정되고, 소수의 지배자가 초월적 · 강권적으로 지배한다. 

특히 권력집중이라는 면에서 전제정치를 파악하는 입장(K. 뢰벤슈타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면을 강조하는 입장(H. 켈젠) 등이 있어 다의적(多意的)이나 일반적으로 비민주적인 정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다른 정치용어와 마찬가지로 가치평가의 뜻이 포함되어 있어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주정치가 타락한 형태를 참주정치(僭主政治, tyranny)라 불렀는데, 이것도 전제정치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떠한 지배자도 전혀 제한 ·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전통이나 관습 · 종교 등에 의한 제한을 받게 된다.  역사적으로는 아시아적 전제, 특히 차리즘, 유럽에서의 전제군주제, 독일에서의 히틀러에 의한 나치스의 지배체제 등이 전제정치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자기보존권 [right or self-preservation, 自己保存權]

국가가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  자존권이라고도 한다.  권리행사의 요건은 ‘국가존속을 위한 필요성’으로서 외국의 부당한 침해행위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권리의 구체적 내용은 명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날 실정법상의 권리로서는 인정하기 어렵고 이와 유사한 자위권(自衛權)이 실정법상 확립되어 있다.

자연주의 [naturalism, 自然主義]

프랑스를 주축으로 하여 19세기 사실주의를 이어받아 세기말에 활발했던 문학사조.  프랑스 이외의 여러 나라에서도 소설과 연극에 강한 영향을 나타냈다.  이 사조의 창시자는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이다.  졸라는 젊어서는 도리어 낭만주의적 경향이 강한 작가였는데 플로베르, 공쿠르형제 등의 관찰을 원리로 한 사실풍의 작품에 영향을 받고, 1864년경부터는 확실히 리얼리즘 문학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특히 공쿠르의 《제르미니 라세르퇴》라는 박복한 가정부의 일생을 그린 소설에 감명을 받고 이 작품을 ‘불결한 문학’이라고 비난하는 측에 대해 강력히 항변하고 변호하였다.  1860년대 프랑스 사조에 지도적 역할을 한 것은 H.A.텐의 실증주의였는데 졸라는 이 사상가의 말을 빌려 자신의 문학이론을 뒷받침하려 하였다. “악덕(惡德)과 미덕(美德)은 다 같이 황산이나 설탕물처럼 화합물(化合物)이다”라는 말은 자신의 저서 《영국문학사》 서문에 쓴 유명한 말인데 졸라는 이 말을 자기 작품 《테레즈 라캥(1867)》의 제2판 서문 속에 인용하였다.  졸라는 거기에 덧붙여 “두 등장인물의 살아 있는 몸뚱이에 해부의(解剖醫)가 시체를 해부하듯 분석하였다”라고 자신의 창작태도를 밝히고 있다.

그의 선배 공쿠르는 “소설은 연구다”라고 말하여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태도를 나타내었는데 졸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설은 과학이다”라고 단언하였다.  과학을 존중하던 당시의 풍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이유로 졸라가 이용한 것은, 당시 유명했던 클로드 베르나르의 《실험의학서설(實驗醫學序說)》의 사상이었다. 의학은 엄밀한 실험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설파한 이 책의 문장을 그대로 문학이론으로 전용한 느낌이 있는 것이 졸라의 《실험소설론(實驗小說)》(1880)이다.

그러므로 유럽의 자연주의의 기본정신은 인간의 생태를 자연현상으로 보려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태도도 자연과학자와 같아야 하는 것이 이상인 것이다.  자연현상으로 본 인간은 당연히 본능이나 생리의 필연성에 강력하게 지배된 것으로 그려진다.  외부로부터 그려지기 때문에 내면적으로는 빈약하고 단순할 수밖에 없다.  졸라는 자신의 실험을 위하여 과학적 방법을 쓸 필요를 느끼고 당시 주목의 대상이었던 유전학설(遺傳學說)에 착안하였다.  그는 또 그의 작품에서 유전의 법칙을 인용하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숙명적인 유전에 의하여 발작적으로 살의(殺意)를 일으키는 대목을 그렸다.

자연주의 작가는 플로베르나 공쿠르의 사실적 방법을 배운 탓으로 자료연구에도 열심이었다.  졸라는 《선술집》을 쓰기 위하여 몇 년간이나 파리의 변두리 노동자촌을 조사하였다.  그는 발자크의 《인간희극》에 대항하여 《루공마카르 총서(叢書)》라는 20권에 달하는 종합소설을 썼다.  루공, 마카르 두 집안 인간의 복잡한 운명을 삽입하여 제2제정기(帝政期)의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 것인데 자연주의 문학의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졸라뿐만 아니라 자연주의 문학은 대체로 세기말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전체적으로 어둡고 염세적이다.

발자크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승기(上昇期)를 그렸고, 졸라는 그 절정기에서 하강기를 그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졸라 쪽에 현대성이 한층 강하게 나타나는 면도 지나칠 수 없다.  철도나 해운의 발달, 농민의 도시집중, 도시노동자 생활의 비참상, 탄광쟁의(炭鑛爭議), 패전(敗戰), 기타 19세기라기보다 현세기의 생동적인 세태가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졸라를 중심으로 하여 각각 경향은 달랐고 뒤에는 스승으로부터 흩어졌지만 모파상, 위스망 등이 자연주의에 공명하여 그 산하에 모였던, 당시의 젊은 작가들을 졸라의 집 주소를 따서 ‘그루페 드 메당(메당파)’이라고 불렀던 일이 있다.

한국에서 자연주의 문학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염상섭(廉想涉)이다.  그는 1921년에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다음해에는 평론 《개성과 예술》을 발표하여 자연주의 문학의 이론과 실제를 겸한 자연주의 문학의 포고자(布告者)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의 자연주의 문학을 말할 때 문제가 되어온 것은 개념의 모호성과 혼돈, 자연주의와 개성, 자연주의와 개인주의의 관계, 자연주의와 프로 문학,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문제 등이다.  염상섭은 전기 논문에서 ‘자아의 각성’, ‘개성의 발견’, ‘창작상의 개성’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자아의 각성에 대하여는 인간 정신의 가장 본질적인 의의는 자아의 각성 및 그 회복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인의 특색이며 그 가치관으로 볼 때 곧 문예부흥이다.  개개인의 눈으로 보면 어떤 신성(神聖)이나 경건이 도리어 추악·비속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이런 심리상태를 보통 현실 폭로의 비애, 또는 환멸의 비애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사상은 중추가 무너지고 암담과 고독을 낳고 가치관의 혼란이 야기된다.  이에 이상주의적 낭만주의시대를 경과하여 자연과학과 함께 자연주의 또는 개인주의 사상을 유발한 것이다.  둘째, 개성의 발견에 대하여는 개성이란 단독적 생명이며 그것의 유로(流露)가 곧 개성의 표현이다.  일반적 생명과 단독적 생명은 표리의 관계다.  생명은 개성의 자각과 함께 동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위대한 개성의 표현만이 모든 이상과 가치의 본체인 진선미(眞善美)로 표징되는 위대한 사업이다.  셋째, 예술창작상의 개성에 대하여는 미(美)는 쾌감의 상징이다.  그러나 생명이 없다면 쾌감이 있다고 미가 되지는 않는다.  생명의 연소(燃燒)에 미가 있다.  예술미는 작자의 개성을 투영한 창조적 직관의 세계요, 그것의 투영이 예술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생명의 유로와 활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염상섭의 주장에 대하여 여러 논객들이 긍정 또는 부정의 논지를 폈으나, 자연주의는 결국 1920년대 전반에 수법의 문제로서나 문학관의 문제로서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었는데, 예를 들면 나도향(羅稻香) 등 감상적인 낭만주의적인 작가들까지도 그 세력에 끌어들이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연주의는 신경향파(新傾向派)가 등장하면서 이론적 충돌을 빚게 되지만 가령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암야(闇夜)》 《만세전(萬歲前)》 같은 작품에 비하여 신경향파의 소위 최서해(崔曙海)의 빈궁소설은 질적으로 비교가 안될 만큼 낮은 것이었으며, 신경향파 이후의 프로문학은 자연주의 문학에 이데올로기라는 의상을 입힌 문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현진건(玄鎭健)이나 김동인(金東仁) 등의 문학을 자연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역시 한국의 자연주의 문학은 염상섭 한 사람에게서 집중적으로 개화(開花)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리바이어던 표지 http://en.wikipedia.org/wiki/Thomas_Hobbes, 포스트 본문 네이버-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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