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클릭하면 문학과 지성사 홈페이지에서 책 전체 소개를 볼 수 있다.  로욜라 도서관 통로 복사대에서는 여기저기에서 엄선한 단편을 매학기 수십종류 넘게 팔고있다.  친구가 주머니에 있던 350원으로 사준 ‘분노에 대하여 – 김수영’고마워!  ♡  이 글은 11개의 소단위로 나눠져있다.  발췌와 요약을 해보겠다.  필자의 논지는 10에 집중적으로 펼쳐져 있으며 이를 독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1~9에서 적절한 인용과 예를 들어 배경을 심어주고 있다.  10은 요약문이 아닌 전문을 옮겼다.  내가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 왜 그랬던 것인지 김수영의 분석에 비추어 보며 많이 끄덕끄덕 했다.  나르시즘을 자존감을 얻기 위해 잘못 이용한 적은 없었는지 뜨끔해진다.  분노가 이런 것이였어…

 

 1.  분노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  喜怒哀樂.  심지어 서양 문학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단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분노menin를 노래하라, 시의 여신이여”라는 문장으로 시작. 

2.  오래되었으나 부정확.  분노란 무엇?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가?  어긋남.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판단된 사건의 발생.  문제되는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을 전제로 한다.  가치 판단 불허한 일반적 자연 법칙, 개인의 취향에 대해서는 분노가 성립하지 않는다.  예) 내가 화낼 인간은 나와 ‘다른’ 음식을 주문하는 인간이 아니고, 내 음식을 뺏어 먹는 ‘나쁜’ 인간이다. 

3.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항상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예) 옆집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은 사건이 ‘나쁜’ 일이지만 내가 그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음.  가치 판단은 분노의 발생에 대한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  + 여기에 나의 욕구가 관련.  명사 파토스pathos는 ‘겪은 것’을 의미.  나는 파토스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파토스를 ‘겪을’ 뿐이다.  좌절된 욕구, 순수하게 수동적, 육체와 관련하는 어떤 것.  예) 즉각적 직접적 신체적 반응: 분노하면 목소리 떨리고 피가 거꾸로 솟음. 

4.  가치 판단과 욕망 뿐 아니라 자신이 당한 무언가를 되돌려주려는 행위로의 충동을 내포.  보복은 분노에 뒤따라 나오는 행동이 아니고 분노가 이미 안고 있는 의지적 충동.  이것은 정치적으로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만 성립한다.  예) 누군가가 당신의 발을 밟고 지나갔을 때 그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당신의 분노는 크게 누그러질 것이다.  역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진정 분노하고 있다면 나는 그를 공동체의 평등한 일원이라고 간주하는 셈. 

결국 분노에는 세 가지 요소, 즉 규범적 판단, 욕구 그리고 보복에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타인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저질렀고,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가치 판단을 가지고 있으며, 이 일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니고, 따라서 내 욕구에 대한 이 손상을 상대방에게 구체적 행동으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될 때, 이 순간의 정념을 우리는 분노라고 부르자.

5.  마지막 보복에의 의지는 파괴적, 치명적.  사회적 관계의 안정성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킬 가능성.  위험, 불합리한 정서로 이해되어왔다.  Lakeoff의 은유; “the heat of a fluid in a container” (= ‘열 받는다’).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 “지금 내가 얼마나 사악한 짓을 벌이려는지 나도 잘 알고 있지.  그러나 분노thymos, 인간의 최대 불행의 원천인 분노가 지금 내 숙고bouleumata를 지배하고 있다”.   튀모스는 나에게 명령하는 자.  튀모스 표출 이후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야욕은 개인의 것, 그러나 오직 분노만은 전체의 공동체를 휩쓸어간다”(Seneca, De Ira)  스토아주의는 분노 비롯 파토스 일반에 대해 적대적 태도.  행복한 삶 위해 제거되어야 할 치명적 장애물 취급.  이러한 적대감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완벽한 지지.

6.  그러나 분노의 감정 극단적 제거 불가능.  멸절apatheia이 아니라 합리적 사용metriopatheia 해야.  예) 레온티오스, 쌓인 시체더미 보고 싶은 욕망 vs. 한편으론 언짢아 외면하고픈 마음.  결국 보고나서 부끄러워 후회, 자책, 자신에게 분노, 맹렬한 비난.  “인간 안의 사자”; 잘 다루면 참된 용기를 발휘하지만 잘못 다루게 되면 포악한 공격성만을 드러냄.

7.  잘 다루는 것이란 무엇일까?  8.  분노는 나르시시즘과 만나서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한다.  이제 나의 외부에는 아무것도 없고, 분노 외부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나의 판단, 나의 파토스, 나의 분노만 남았다.  9.  우리의 시대는 나르시스의 것.  2006년 Time지 올해의 인물로은 ‘당신You’ 선정.  무제한의 절대적 나르시시즘이 지금의 시대정신.  나르시시즘은 분노를 긍정, 확대, 왜곡. 

10.  이 나르시시즘에서 타인은 오직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그는 나의 존재론적 가능성을 폄하함으로써 나를 발가벗긴다.  타인이 분노의 대상으로 되는 것은 그들이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두렵기 때문인데, 이 공포감으로 인해 나르시스는 타자의 존재를 괄호 안에 묶어 두고 내 정념에 남겨진 타자의 자취만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은 타자에 대한 공포로 인해 세상에 대해서 노여워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듯 보인다.  자신에 대한 애정과 증오, 충만함과 공허감의 왕복운동으로 무기력해진 그는 타인에 대해 분노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뿐이다.  여기에 우리 문화에 고유한 완강한 집단주의는 분노의 나르시시즘을 강화해왔다.  황우석에 대해서는 우리의 맹목적 성과주의를 부끄러워했고, 조승희에 대해서는 그가 한국인이라며 부끄러워했고, 신정아에 대해서는 우리의 학벌사회를 부끄러워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잡혀 있는 한국인 인질들에 대해서는 우리의 팽창주의 기독교 문화를 부끄러워했다.  여기,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실망했고 좌절했으며, 이 세상 어딘가는 잘못 돌아가고 있노라는, 동어반복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불평만이 넘쳐났다.

세상에 분노가 넘쳐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들 자신에 대해서 짜증 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인터넷 게시판이 합법적인 분노의 장소로 자리 잡으면서, 분노는 그만큼 착해지고 안전해지면서 퇴폐적인 짜증으로 바뀌고 있다.  증오의 글들, 짜증의 글들은 소통을 위한 것도 아니고 소통을 위한 것으로 간주되지도 않으며 실제로 소통되지도 않는다.

이 소통되지 않는 노여움은 결국 극단적인 폭력의 형태로 표현된다.  그리하여, 분노의 시대는 갔으되, 분노의 시대는 다시 돌아왔다.  분노는 넘쳐나고 원한은 늘어간다.  이 나르시시즘은 나의 뜻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을 때 분노를 폭발하게 되며, 이는 곧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폭력은 나르시시즘에 매개된 분노의 극단화된 형태이다.  9·11 이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이는 폭력과 테러의 확대 양상은 이 분노의 현상을 더욱 일반화시켰다.  9·11은 미국 사회에 분노와 복수에 대한 오랜 동안의 금기를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사건이 되었으며, 결국 어느 언론인의 말처럼 미국 사회에서 복수에 대한 생각은 “신석기 시대의 마을에나 적합한 정도의 수준으로” 떨어져버렸다.

나르시시즘은 짜증과 폭력, 오직 이 두 가지의 길로만 진화한다.  그래서 나르시스가 품는 복수에의 의지는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을 뿐이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바라보도록 나르시스에게 저주를 내린 이는 다름 아닌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였다.

11.  인간은 사건 자체 때문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 때문에 분노한다.  폐기될 수 없는 실존의 본래적 요소이고 힘.  치유되어야 하는 질병이 아니다.  나의 윤리적 판단이 세계와 대결하는 유일한 정서적 통로.  따라서 부단한, 끊임없는 모험.  헤라클레이토스 曰, “튀모스와 싸우는 것은 어렵다.  무엇을 하고자 하던 간에, 그것은 영혼을 대가로 치르기 때문이다.” 

 

책 소개

『문학과사회』가을호를 엮으며

_한국 문학을 살리기 위해 ‘장편소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문학의 침체를 독자와의 소통의 문제로 보고, 독자들이 선호하는 장편 중심으로 창작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야 한다는 말은 일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출판 자본과 저널리즘의 이해관계가 접근하는 지점에서, 이런 목소리들이 발원되고 있다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장편소설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단편 중심주의, 특히 문예지의 단편 중심주의를 지목하는 일부의 주장에는 비판적 대화가 필요하다.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는 대중적인 장편소설은 예전에도 많았고, 독서 시장에서의 인터넷 소설의 득세가 본격화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한국 문학의 핵심적인 문제는 장편이 많이 생산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좋은 장편소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장편소설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좋은 장편 작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한국 문학사를 통해서 보면 ‘좋은 장편 작가’는 대부분 ‘좋은 단편 작가’였다. 단편은 장편과는 달리 시장의 논리와 대중의 취향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문학 공간의 자립성을 확보하는 방편이다. 단편을 통해 자기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한 작가들이 장편을 통해 그 공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한국 문학에 기여한 사례는 적지 않다. 2000년대 이후의 한국 문학의 중요한 갱신이 대부분 젊은 작가들의 단편소설과 새로운 시인들의 시에서 나왔다는 것은 여전히 이들 장르가 한국 문학을 새롭게 하는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거액의 상금을 내세운 장편 신인 소설상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장편소설’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라는 질문도 이제는 던져볼 필요가 있다. 또 장편의 호흡에 걸맞은 상상력과 스타일의 계발을 위한 작가들의 허심탄회한 적공과 심원한 문화적 분위기 조성 등 여러 생각거리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동안 여러 작가들의 의미 있는 장편소설들을 의욕적으로 분재해왔던 『문학과사회』는, 앞으로도 좋은 장편소설들을 지속적으로 연재하여 한국 문학의 상징적 자산을 높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좋은 장편들이 생산되고 문학적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비평적 관심을 집중하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소설의 길이가 혹은 그 형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상관없이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상상력을 촉발시키려는 노력일 따름이다.

우리는 한국 문학의 새로운 상상력이, 극도로 부박한 현 사회 문화를 반성케 하고, 존재와 현실을 제대로 성찰케 하여 우리 삶과 문화의 겹을 두텁게 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좀더 신명나는 살림의 풍토를 조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문학이 비록 끊임없이 현실에 패배하고, 하향평준화 일로에 있는 대중문화에 의해 문학적 소통의 방해를 받는다 해도, 문학은 여전히 그런 현실의 심연에서 깊이 자맥질하면서 반성의 계기와 상상력의 새로운 열림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과 반성의 지점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 문학은 과연 그런 노력들을 어느 정도로 수행하고 있는가? 비평가 김주연씨는 이 지점에서 의미심장한 비판적 메시지를 한국 문학 현장에 던진다. 「진리와 권력, 그리고 문학―문학의 쇄말화 현상 극복을 위하여」에서 그는 품위나 교양과 거리를 둔 엽기적 스펙터클이나 만화적 딜레탄티즘이 오늘의 문학/문화 현실에 횡행하고 있음을 준열하게 비판한다. 객관적 현실 인식도, 주관적 내면 성찰도 결여한 채 전복과 전위의 포즈만이 혹은 ‘자학적 서사 모방’만이 넘실대는 현상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문학 본연의 진정한 반성의 계기를 통해 현실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세계를 전면적으로 껴안으면서 넘어서는 진정한 문학적 전복을 이루어, 사회와 의미 있는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와 같은 비판적 제안과 맥락을 같이하면서 우리는 오늘의 문학적 풍경을 좀더 깊이 있게 그리고 반성적으로 성찰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문학과사회』 이번 호 특집은 ‘2000년대 문학의 키워드─젊은 비평가의 시선’이다. 2000년대 문학을 둘러싼 비평 담론들이 독법의 문제로부터 하나의 지형을 맥락화하려는 작업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지형의 내부 혹은 그 지형의 바깥을 좀더 내밀하게 그리고 반성적으로 살피는 작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 작업을 통해 2000년대 문학을 하나의 이슈, 하나의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풍부한 다양성과 창조적 혼종성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세대적으로 2000년대 문학과 함께 자신의 문학적 글쓰기를 출발시킨 비평 세대들에게 2000년대 문학의 중요한 키워드는 무엇인가를 들어보는 것은, 이 시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2000년대 문학의 내적 자질들을 자신의 문학적 실존과 동일화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여기 젊은 비평가들은 2000년대 문학 공간에서 가장 관심 있고 문제적이라고 생각되는 문학적 지점을 특정한 키워드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등단한 강계숙·강유정·복도훈·신형철·이수형·정여울·함돈균·허윤진 씨 등 8명의 젊은 비평가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2000년대 문학에서 자신이 주목한 지점과 테마를 의미화하는 글쓰기를 지켜보는 것은 한국 문학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생산적인 다양성을 개방하는 비평적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의 창작란도 풍성하다. 일찍이 『여수의 사랑』 『검은 사슴』 등을 상자하면서 ‘한 젊은 마이스터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는 고평을 받았던 한강씨가 이번 호부터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 화가의 죽음을 놓고 삶과 죽음의 심연을 총람적으로 해부하면서, 매우 역동적인 서사적 구성을 통해 존재의 파토스와 로고스를 가로지르며 현존의 새로운 성찰을 진지하게 모색하게 될 한강씨의 신작 장편에 독자들의 많은 성원이 있으시길 바란다. 박성원·원종국·박민규·황정은 씨의 신작 소설을 통해 다채로운 발상법과 전복적 감각을 맛보게 된 것도 우리 모두의 기쁨이다. 또한 김기택·허연·이기성·김록·하재연·황병승 씨의 신작 시편들은 오늘날 한국 시의 미학적 성취를 가늠케 하고 새로운 출구를 예감케 한다.

‘이 작가’에는 중견 작가 윤후명씨를 초대했다. 윤후명씨는 현대성의 황폐함을 독특한 무늬와 스타일로 점묘해온 작가이다. 그는 오랫동안 폐허의 유목민이었다. 폐허를 바라보는 허무혼의 인식 공간은 광활한 대우주를 향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폐허의 현대적 몽유록으로 보이는 윤후명의 소설은 대부분 폐허를 찾으러 떠나고 헤매는 길 위에서 인간의 본원적 영혼을 입증하려는 끊임없는 실험의 소산이었다. 『둔황의 사랑』에서 신작 『새의 말을 듣다』에 이르기까지 윤후명씨의 소설 세계를 신예 비평가 김대산씨가 매우 독특한 독법으로 정리하면서 새로운 문학적 물음들을 제기하고 있다. ‘선택, 젊은 소설’란을 통해 우리는 신예 작가 하재영씨의 「같이 밥 먹을래요?」(『실천문학』 2007년 봄호 발표)를 주목했다. 가독성과 흡인력 넘치는 문장으로 식사의 문화 정치학을 독특하게 형상화한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와 사회적 존재, 정치적 존재, 문화적 존재의 이질혼성적 성찰 가능성을 탐문하게 된다. 이광호씨가 이 소설에 대한 맛깔스런 해설을 맡아주었다. 또한 ‘문학 공간 2007: 가을’에서는 신대철·김광규·김중일 씨의 시집과 은희경·김경욱·김숨 씨의 소설들을 놓고 독자 여러분과 생산적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그 대화의 테이블에 박수연·조강석·김용희·박혜경·김동식·조연정 씨 등이 동참하여 꼼꼼한 발제를 맡아주었다.

77호부터 새롭게 선보인 ‘사유의 발견’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에 화답하는 네 편의 글들도 적극적인 주목을 요한다. 철학자 김수영씨는 「분노에 대하여」에서 거짓 분노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분노의 참 맥락을 구성해 보인다. 고전 철학과 고전 문학, 그리고 신화의 경계를 유현하게 넘나들며 분노에 대한 사유의 척도를 새롭게 마련하여, 오늘의 현실과 담론 문화를 반성적으로 진단한다. 그가 보기에 작금의 타락한 나르시시즘 문화는 퇴폐적인 짜증이나 폭력으로 점철된 것일 따름이다. 분노의 정념에 대한 이론적 성찰은 물론 일그러진 대중 수사학 현실에 대한 비판적 접근 가능성, 현대 인문학의 현실 치유 가능성 등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글이다. 최근 『문학의 질서―현대 문학이론의 문제들』을 상자하면서 문학이론의 위상과 기능, 텍스트의 구조, 시적 언어의 특성, 서사적 형식, 장르의 유형론, 소설의 진화, 문학과 사회적 환경 등 현대 문학이론의 주요 테마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룬 바 있는 비평가 김태환씨는 「형식과 내용―문학 진화의 이론을 향하여」에서 해묵은 형식과 내용의 문제를 해묵지 않은 신선한 접근법으로 조명한다. 형식의 구체화 과정과 내용의 변이 가능성 사이의 역동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문학이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데, 독자나 작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참조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평론가 주일우씨의 「넘을 수 있을까?」는 어느덧 범속하게 쓰이고 있는 ‘통섭’이라는 용어의 맥락을 조감하면서, 통섭 담론의 상황과 가치, 한계 등을 차분하게 적시하고, 새로운 대화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지식의 다양성과 경계의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진정으로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새로운 담론의 가능성에 대한 지혜를 궁리하고 있다. 시인이자 음악·문화평론가인 성기완씨는 77호에 이어 생성 중인 현대의 신화들을 「신탁이 내려진다 2」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해부한다. 요즘 시중에 한참 논란이 되는 영화 「디-워」 현상을 비롯해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등 현대의 신화를 독특한 감각으로 분석하면서, 오늘의 문화 현상을 새로운 안목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문화 코드들을 들추어낸다. 아울러 작금의 문화 현실에서 여러모로 왜소해진 비평 담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유도한다.

‘비평·논문’란에 실린 박천홍씨의 「근대 출판의 선구자 육당 최남선」 또한 흥미롭다. 흔히 근대 문예운동의 개척자로 알려진 최남선의 다양한 면모를 실증적인 자료들을 통해 보여주면서 특히 최남선의 출판 이력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근대 문화의 여명기의 풍경을 실감 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현재 인문·사회과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 나가는 ‘서평 공간’에서는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을 소설가 김연수씨가 리뷰해주었고, 2007년 6월 8일 타계한 리처드 로티의 철학 세계 전반에 대해 이유선 교수가 그 맥락을 짚어주었다. 또 오오키 야스시의 『명말 강남의 출판문화』를 출판평론가 표정훈씨가 친근하게 소개해주었다.

연일 계속된 폭염과 장마와 맞씨름하면서 『문학과사회』에 좋은 글을 선사하신 필자들과, 계획된 원고를 복잡한 사정으로 미처 마감하지 못한 채 숨은 필자들, 이번 호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어주실 독자 여러분 등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_문학과사회

목차

『문학과사회』 가을호를 엮으며

특집 2000년대 문학의 키워드─젊은 비평가의 시선
강계숙 그대 아직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강유정 ANTI IDEA: 뉴 로맨서의 개인 암호
복도훈 산주검undead
신형철 미니마 퍼스펙티비아minima perspectivia
─2000년대 시의 어떤 경향
이수형 문학의 무상성無償性
정여울 팩션적 글쓰기와 미디어 친화력
함돈균 이 時代의 혁명, 이 時代의 니힐리즘
허윤진 즐거워요, 즐겁습니다


김기택 즐거운 버스 외 3편
허연 생태 보고서 외 3편
이기성 자장가 외 3편
김록 공간의 태도 외 3편
하재연 인형들 외 3편
황병승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 외 3편

소설
박성원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삶에 대하여
원종국 두 사람이 보이는 자화상
박민규 크로만, 운
황정은 오뚝이와 지빠귀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장편연재 1]

선택, 젊은 소설
하재영 같이 밥 먹을래요?
이광호 식사의 정치학

이 작가
윤후명 작가의 편지
김대산 윤후명의 고전적 아포리아
─윤후명 소설이 던지는 물음에 관하여

사유의 발견
철학/김수영 분노에 대하여
문학·예술/김태환 형식과 내용─문학 진화의 이론을 향하여
사회·과학/주일우 넘을 수 있을까?
문화·미디어/성기완 신탁이 내려진다 2

비평·논문
김주연 진리와 권력, 그리고 문학─문학의 쇄말화 현상 극복을 위하여
박천홍 근대 출판의 선구자 육당 최남선

문학공간 2007: 가을
시 신대철 시집, 『바이칼 키스』 박수연
김광규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 조강석
김중일 시집, 『국경꽃집』 김용희

소설 은희경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박혜경
김경욱 장편소설, 『천년의 왕국』 김동식
김숨 소설집, 『침대』 조연정

서평공간
김연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이유선 리처드 로티,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 『미국 만들기』
표정훈 오오키 야스시, 『명말 강남의 출판 문화』

제19회 이산문학상 발표
김광규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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