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내가 찍힌 cctv 화면을 직접 본 적이 없으나, 세계화지수 9위 도시 서울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cctv가 많다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하는 중이였다.  런던 거주자들은 하루에만 약 300개의 cctv에 찍힌다며?  3년 전 우리집과 우리앞집에 도둑이 다녀간 이후로 cctv는 안달고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라는 표지판만 설치해놓았다.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만 해도 표지를 읽은 사람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으로 앞집분들이 설치하신 것 같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우리집이 있는 10층에서 문이 열리면 제일 눈에 띄게 붙어있는 표지판이 거짓말이라서 그런 것일까.  ‘진짜’ cctv도 별로 신경쓰고 살지 않았으며 ‘그걸 누가 언제 다 보고 앉았겠어’, ‘찍힌 화면을 다 돌려보는 동안에도 cctv는 계속 찍고 있으므로 영원히 다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처럼 제논을 흉내내기도…  -_-  그러나 우리집앞 가짜 표지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실제로 cctv가 있다고 써놓은 말이 ‘그냥 거기에 cctv가 존재함’을 알려주는 정보성 발언이라기 보다는: cctv가 있으니 행동을 주의하라, cctv가 있으니 이 곳에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언제든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등의 강화된 함축 의미를 수반한다.  “시계 있어?”라고 묻는 사람에게 시계가 있다고만 대답하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는 것처럼.

방금 기숙사 사감님이 전화를 하셨는데, 몇월 몇일 몇시경에 엘리베이터 앞 휴게공간에서 대화를 나눈 남녀의 얼굴을 기억하냐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앞 공간에 탁자와 의자가 있어서 앉아 쉴 수 있으나, 남자는 여자 기숙사의 휴게공간에서 쉴 수 없다며.  남녀간 기숙사 출입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꾸는 것에 대해 몇주 전 설문조사를 했는데, 당시 사감님이 직접 설문지를 나누어주시면서 사감님의 개인적 의견을 강력히 피력하셨으며, 사감님이 보는 앞에서 설문지를 작성해야했고, 설문지에 설문에 응하는 사람의 신상정보를 자세히 적어야했다.  이 기숙사는 국제학사로 지어놓고 교환학생을 많이 받아서, 내가 알기로는 외국인 입주율이 약 30% 정도이다.  사감님 말씀에 따르면, 외국인 학생들이 남녀 기숙사간 출입을 요구하고 있으며, 외국인 학생들은 ‘다른 한국 학생들도 남녀간 기숙사 출입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그런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런 아전인수격 설문의 목적은, 외국인들의 주장에 반대하기 위해 객관을 가장한 무기가 필요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설문의 각각의 ‘보기’, 또는 양쪽의 대립되는 후보 의견에 대해서는 공평한 변호와 설명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설문에 응하는 사람에게 한 쪽의 입장만을 주입해서는 안된다.  그랬을 경우 설문의 결과는 신뢰도가 떨어지고, 신뢰도가 없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정책 결정에 대한 논거로 채택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이 설문조사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에 반대하기 위한 강압적 자료 조작’이라는 비판이 일었으나, 비판이야 어찌되었건 설문의 결과대로 지금 우리는 서로의 기숙사에 출입할 수 없다. 

그런데 A동은 여자동, B동은 남자동으로 정해 출입까지 금지해 놓았으면서 남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실은 남자동 1층에 있고, 계속되는 2차 3차 4차 기숙사생 추가 모집의 결과 A동 1층에는 남학생들이 입주해서 살고있다.  지금의 제도를 이처럼 헷깔리는 공간배치에 적용하여 위반학생을 발라내려면 누가 어느 방으로 들어갔는지 확인 가능한 복도의 cctv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려고 갔는지, 혹은 자기 방에 가려고 간건지, 그분들이 말하는 ‘나쁜 의도’로 갔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여기는 ‘학교’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문란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곳이며, 동시에 ‘민간자본’ 기숙사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기숙사’에 살면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처리해주지 ‘못하는’ 곳이니까.  기숙사생들은 마포구 지정 쓰레기봉투를 편의점에서 구입해서 버려야하니까.

다짜고짜 신상을 알아볼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하기 전에, 왜 내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  휴게공간의 한국인 남녀를 보고 몇몇 외국인들이 불만을 제기하며 신고를 해왔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설문을 해서 제도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그 일이 ‘신고할 일’로 둔갑한 것이 당연하지.  신고를 받고 cctv를 돌려봤는데, 마침 그 남녀가 앉아있던 테이블 옆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내 얼굴을 알아보셨고, 기숙사 입주시 기입한 개인 휴대전화로 전화를 하셔서 앞뒤 순서 아무것도 없이 ‘그 여자 또는 그 남자’의 얼굴, 신상, 대화 내용을 물어봐도 되는 것인가?  나조차도 한번도 못본 ‘내가 찍힌 cctv화면’을 진정 당신은 봤습니까?  그렇다, 봤다.  전화를 끊고나니 속이 안좋다.  난 그들이 누군지 모르며 사진과 대조해 골라낼 의향과 능력, 둘 다 없고, 그들이 엘리베이터 앞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에게 문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면 과대망상일걸.  향후 기숙사 입주 계약서에는 cctv를 이용한 감시, 협박, 조사를 받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만 입주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해서, 앞으로의 입주자가 갑작스러운 개인 영역 침해에도 놀라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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