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바로 앞에 있는 전신주에 잃어버린 개를 찾는다는 전단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개의 특징이 ‘엄청 소심함’이라고 되어있는 것이었다.  개의 특징 : 검은색 푸들, 5살, 엄청 소심함.  소심한 개를 잃어버린 가족의 심정이 상상이 되어 순간 먹먹해졌다.  신촌에서 다섯 살 먹은 엄청 소심한 푸들을 발견하면 꼭 주인을 찾아주세요.

얼마 전에는 증명 사진이 필요해서 사진관에 가려는데, 취업 지원 시기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최근에 찍은 사진이 있긴 했지만 어디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기가 부끄러워서 다시 찍으려던 차였다.  방에서 거울 보다가 예약 시각에 빠듯해, 총알같이 뛰어나가 길을 건너 택시를 잡아탔다.  숨을 고르며 문을 열자 택시에서 나오던 노래는 let it be.  바로 그때, 얼마나 더 예쁘게 나온 사진을 내겠다고 이러는건지, 하는 생각이 확 밀려왔다.  촬영하고 바로 수정하는 걸 봤는데, 아주머니께서 볼살을 조금만 빼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셨다. 

인식론 시간에는 교수님이 자꾸 질문을 하신다.  지목당한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맞는 얘기에요.  그런데 중요한 얘기는 아니에요.”  교재 한 단원을 요약해보라고 그래서 역시 누가 부들부들 대답하면, “아니 그렇게 장황하게 말고, 핵심만 간단히.”  다시 학생, 짧게 대답하자, “지금 너무 무식하게 간추렸어요.”  한참 수업을 하다 끝날 무렵 질문 있냐는 물음에 누군가 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마자 술술 답변해주시며, “학생 표정을 보니 마음 속으로 용납은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 그 뜻인가요?”

오늘 저녁은 알고보니 옆방에 사시는 기숙사 사감님과 함께 먹었다.  H사감님은 내게 온 러브레터를 뜯어보는 건 상상도 못할 만큼 소녀처럼 생기셨다.  오히려 내가 H사감님의 우편함이라도 뒤져야할 것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나서 방에 올라와 우리 룸메와 함께 엘리베이터 앞 로비에 앉아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후라이팬에 뭐 볶을 때 튀는 기름에 색깔이 있다면 저럴거야, 비오는 날의 불꽃놀이라니 눈 감으면 천둥같다, 얘…  그러던 중 긍정적인 사촌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볼 때 너하고 니 동생은 천재성이 다분해.”  “아언니!”  “이건 사실인데!”

피프 개막작 예매에 성공했다는 기쁨의 자랑 문자, 홍대에서 술마시고 다트 던지자는 유혹,  독일문화원 파스빈더, 기한 얼마 남지 않은 영화 예매 할인권…  이런 것들은 잠시 건포도나 북어처럼 잘 말려두었다가.  우리 동물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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