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사IN 34호부터 37호의 표지 제목은 “두려움, 식탁에 오르다” > “왜냐구요?  촛불 시위 참석 10대는 말한다” > “이명박 정부 촛불에 뺨 맞고 포털에 화풀이?” > “우울한 백일 문제가 뭘까” ; 이처럼 광우병과 한미 FTA 비준안 협상, 그리고 새 정부의 난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SRM이 뭔가?  변형 프리온은 뭔가?  원하지 않으면 안 먹을 수 있을까?  지금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격화되지 않아서 안전한가?  혹시 대통령 쪽으로 향하는 ‘소통’은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상태는 아닌가?  공기업 민영화 하면 누구에게 뭐가 얼만큼 좋은가?  괴담은 누구 입장에서 괴담이길래? 

어제 친구 두 명과 뼈없는 닭고기를 카레순살 양념후라이드 반반 시켜 먹는데 광우병과 촛불 시위 이야기가 나왔다.  1학년 때 독후감 숙제 하려고 읽었던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행복한 닭이 낳은 행복한 달걀을 먹어야 한다’고 하신 틱낫한의 말씀이 떠올랐다.  뭔가 다른 생각이 있으니 이 난리를 겪고서라도 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지금 그 다른 생각이 뭔지 확실히 보이지가 않으니 다들 들고 일어서는게 아닌가, 니네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안에 붙은 조류독감 안심하라는 전단은 봤냐, 초식해야 하는걸까…  일반생물학 삼수강 시절 생물학 교수님께서는, 제대로 균형잡힌 초식을 계획적으로 하는 것보다 고기 한 점 집어먹고 마는게 속편하고 간편한 영양 섭취 방법이라 하셨었다.

환경영화제 일로 환경재단이 있는 프레스 센터에 며칠 왔다갔다 하면서 봤을 때, 그 앞에서는 항상 서명 운동과 소의 탈을 쓴 코스프레가 있었고, 거기서 한 사람이 들고 흔들 수 있는 크기의 광우병 현수막을 마치 콘서트장 야광봉 팔듯 팔고있는 수레도 봤다.  인문관 계단과 복도 게시판에는 ‘뿔난’ 학생회가 시청 집회에 같이 가자는 글을 크게 붙여놓았다.  엊그제 모르는 번호로부터 ‘쇠고기 고시고시 시청 광장으로 집결!’이란 문자를 받고선, 이거 그냥 한번 촛불 켜놓고 우우우 하는 게 아니로구나,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빨간 마스크가 입 찢으러 온다는 소문 처음 듣고난 후 한동안 소문이 없어지지 않았던 때의 괴기스런 불안감보다 심하다. 

‘0교시 때문에 밥 못먹고 학교 가서 광우병 급식 먹고 탈 났는데 의료 민영화 때문에 치료 못받은 채로 대운하 건설 현장에 투입될지도 모르는 불쌍한 십대’는 학주 피해 하얀 가면 쓰고 촛불 들고 시위해가매 386세대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반면, 대선과 국회의원 총선 투표율 최악에다 취업난과 정치적 무관심으로 침묵의 나선에 휘말려들어가는 이십대?  일단 이십대의 평범한 대학생으로서 지금 나를 둘러싼 이십대들을 보면 어떠한가 – 이들이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를 저지를만큼 소심하지 않다.  다원적 무지란 자신의 의견이 타인의 의견과 다르다고 오판, 짐작하는 것으로서 타인의 의견과 다를 것 같은 자신의 의견을 억제하고 타인을 추종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지금 광우병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오히려 언론이 이십대를 틀짓는 방식이 이십대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있다.  너희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 어여 취업해야지, 나는 lap dog으로 살기로 했으니 건들지 마라, 이십대 되니까 십대적 효순미선 촛불 집회는 생각안나겠지, 지칠 때까지 떠들어서 뭐가 뭔지 모르도록 정보 과잉 상태로 만들어야겠구나 – 진짜 data smog 수준이다, 이십대라는 집단의 믿음 체계는 환영이야, ‘뭐시기-프렌들리’ 할만한 돈이나 힘도 없잖니 ; 등등등으로 들린다, 적어도 내 귀에는 말이다.  집단이 지위를 획득하기도 전에, 최면걸듯 이십대는 투쟁을 할만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주입하려는 모양이다.  이런 과격한 헤게모니라니.

광우병과 아-무 관련 없는 Theodore Roethke의 시 <The Cow>로 마무리하고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이 시를 전기충격 받아 일어선 모든 기립불능소들에게.  오역이라면 댓글 달아주십사.

 

<The Cow> 

 

There Once was a Cow with a Double Udder.  젖통이 둘 달린 소가 한마리 있었네

When I think of it now, I just have to Shudder!  생각만 해도 몸서리 칠 수 밖에 없다니까!

She was too much for One, you can bet your Life:  그녀는 한명이 짜기엔 너무 컸어, 정말로

She had to be milked by a Man and his Wife. 한 남자와 아내까지 붙들러 그녀를 짜야했다네

Advertisements